Interview : 인터뷰
‘친절하지 않아도 돼요’
저자 이민경
에디터: 유대란, 사진 김종우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는 200만 원을 목표로 했던 크라우드 펀딩이 4,000만 원을 훌쩍 넘기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품귀현상을 빚었다. ‘성차별 토픽 일상회화 실전 대응 매뉴얼’을 표방한 이 책은 여성의 차별을 주제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했던 모든 이가 기다려온 책이다. 저자는 독자가 원치 않는 대화는 미리 봉쇄하고, 논쟁의 흐름을 바꾸고, 통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여러 팁을 수록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왜 그래도 되는지’를 알려준다.
아뇨.(웃음) 다들 그걸 가장 먼저 물어보세요. 독립출판물인데다가 페미니즘 책인데 이렇게 잘 팔릴 거라고 예상 못하셨죠? 저도 예상 못했어요. 다만 저랑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 이 책을 받았을 때 좋아할 사람이 많을 거라는 건 알았어요. 제가 겪은 일이고, 제 친구가 겪은 일이고, 친구의 친구가 겪은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어디까지 확산될지는 몰랐어요. 판매는 다른 이야기잖아요. 이 정도로 팔릴 거라곤 상상 못했죠.
최근 여성 이슈와 페미니즘이 확산되었잖아요. 사실 문제는 언제나 있어 왔는데 새삼 답답한 소리들을 하는 거죠. 들어보셨겠지만, “차별은 없는데 왜 페미니즘이냐” “이만하면 살기 좋지 않냐”라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거기에 대응하는 설명을 해왔어요. 그런데 사건 이후 그 본질이 여혐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이 불붙음과 동시에 개인들은 소진이 됐어요.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경험이 떠오르고, 피해자가 ‘나’였을 수 있다는 자각을 하고. 그런데 자꾸 지인들조차 “그게 무슨 여성혐오냐” “너무 예민하다”라는 무례한 반응을 하니까 번아웃돼서 쓰러져 나가는 게 눈에 보였어요. 그런 와중에도 원래 하던 대로 친절하게 상대를 해주고, “그게 아니라…” 하면서 설명을 해주다가 상처받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거죠.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 구매자의 95%가 여성이고, 5%가 남성이에요. 주 연령대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고요. 그런데 20대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20대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20~24세가 제일 많아요. 제가 염두에 둔 독자들이에요.
사실 사람들은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지, 그것부터 알고 싶어 하잖아요. 빨리 설명을 읽고 대화에 돌입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책의 입장은 ‘대화를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무례한 상대를 굳이 교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해라’예요. 무례한 상대를 힘들여 교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과만 이야기해도 된다는 거죠. 그래서 ‘왜 안 해도 되는지’를 설명하는 서론이 길어요. 또 현실에서도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은 이렇게 많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이렇게 적다는 걸 보여주는 어떤 장치이기도 해요.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템플릿 정도를 주고, 본인의 상황에 맞게 변용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언어 전공자이기도 하고, 비어 있는 부분이 정확히 보였어요. 이론서는 많이 있어요. 이론서를 읽으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만, 막상 차별적인 발언에 맞닥뜨렸을 때는 그다지 소용이 없어요.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는 건 알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비어 있는 거예요. 문법책을 아무리 봐도 말은 잘 안 떨어지잖아요. 실제로 발화를 하지 않으면 발화가 늘지 않잖아요. 그 간극을 느꼈어요. 언어를 전공할 때 느꼈던 간극이랑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간극이 똑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