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친절하지 않아도 돼요’
저자 이민경

에디터: 유대란, 사진 김종우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는 200만 원을 목표로 했던 크라우드 펀딩이 4,000만 원을 훌쩍 넘기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품귀현상을 빚었다. ‘성차별 토픽 일상회화 실전 대응 매뉴얼’을 표방한 이 책은 여성의 차별을 주제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했던 모든 이가 기다려온 책이다. 저자는 독자가 원치 않는 대화는 미리 봉쇄하고, 논쟁의 흐름을 바꾸고, 통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여러 팁을 수록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왜 그래도 되는지’를 알려준다.

Chaeg: 책을 예약 주문해서 2주 정도 기다렸다가 받았어요. 이렇게 잘될 거라고 예상하셨어요?
아뇨.(웃음) 다들 그걸 가장 먼저 물어보세요. 독립출판물인데다가 페미니즘 책인데 이렇게 잘 팔릴 거라고 예상 못하셨죠? 저도 예상 못했어요. 다만 저랑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 이 책을 받았을 때 좋아할 사람이 많을 거라는 건 알았어요. 제가 겪은 일이고, 제 친구가 겪은 일이고, 친구의 친구가 겪은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어디까지 확산될지는 몰랐어요. 판매는 다른 이야기잖아요. 이 정도로 팔릴 거라곤 상상 못했죠.

Chaeg: ‘나도 겪고, 친구도 겪고, 친구의 친구도 겪은 문제’라는 말은 사실이기도 하겠고, 비유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최근 여성 이슈와 페미니즘이 확산되었잖아요. 사실 문제는 언제나 있어 왔는데 새삼 답답한 소리들을 하는 거죠. 들어보셨겠지만, “차별은 없는데 왜 페미니즘이냐” “이만하면 살기 좋지 않냐”라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거기에 대응하는 설명을 해왔어요. 그런데 사건 이후 그 본질이 여혐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이 불붙음과 동시에 개인들은 소진이 됐어요.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경험이 떠오르고, 피해자가 ‘나’였을 수 있다는 자각을 하고. 그런데 자꾸 지인들조차 “그게 무슨 여성혐오냐” “너무 예민하다”라는 무례한 반응을 하니까 번아웃돼서 쓰러져 나가는 게 눈에 보였어요. 그런 와중에도 원래 하던 대로 친절하게 상대를 해주고, “그게 아니라…” 하면서 설명을 해주다가 상처받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거죠.

Chaeg: 어제 확인해보니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5위에 올라 있었어요.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들었는데, 겨냥 독자층과 구매층이 일치하나요?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 구매자의 95%가 여성이고, 5%가 남성이에요. 주 연령대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고요. 그런데 20대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20대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20~24세가 제일 많아요. 제가 염두에 둔 독자들이에요.

Chaeg: 구성을 보면 서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실전은 비교적 분량이 짧아요.
사실 사람들은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지, 그것부터 알고 싶어 하잖아요. 빨리 설명을 읽고 대화에 돌입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책의 입장은 ‘대화를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무례한 상대를 굳이 교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해라’예요. 무례한 상대를 힘들여 교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과만 이야기해도 된다는 거죠. 그래서 ‘왜 안 해도 되는지’를 설명하는 서론이 길어요. 또 현실에서도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은 이렇게 많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이렇게 적다는 걸 보여주는 어떤 장치이기도 해요.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템플릿 정도를 주고, 본인의 상황에 맞게 변용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Chaeg: 왜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언어 전공자이기도 하고, 비어 있는 부분이 정확히 보였어요. 이론서는 많이 있어요. 이론서를 읽으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만, 막상 차별적인 발언에 맞닥뜨렸을 때는 그다지 소용이 없어요.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는 건 알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비어 있는 거예요. 문법책을 아무리 봐도 말은 잘 안 떨어지잖아요. 실제로 발화를 하지 않으면 발화가 늘지 않잖아요. 그 간극을 느꼈어요. 언어를 전공할 때 느꼈던 간극이랑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간극이 똑같더라고요.

009_interview_book_01

Please subscribe for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