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Rustic Life, The New Romance

에디터. 지은경 / 사진. Gestalten

시골집에 들어서면 어딘가 익숙한 숨결과 흔적이 느껴진다. 거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회벽과 가공되지 않은 나무의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흙이 조금 묻어 있어도, 벽지가 조금 뜯겨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원초적인 평안함에 머물고만 싶어진다. 세월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룻바닥은 오랜 시간이 물려준 축복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이러한 여유와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동경한다 한들 익숙한 도시를 당장 떠날 수는 없는 터. 도시 생활을 근간으로 하되, 약간의 노력으로 언제든 자연 친화적인 삶을 더할 수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소개한다.
‘와비사비’는 일본어다. 영어로는 일어 원음을 그대로 가져와 ‘wabi-sabi’로 표기한다. 와비(わび·侘)는 세속적인 만사에서 해방된 한적하고 수수한 생활을, 사비(さび·寂)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 개념을 묶은 와비사비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나타내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 또는 윤리적 관념을 이르는 말로 통한다. 은둔과 자적의 정신을 강조하는 이 단어는 인테리어 용어로도 쓰인다. 와비사비를 디자인적 개념으로 해석하면 ‘훌륭한 상태에 대한 열등한 상태’, 한 마디로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그만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분위기로 풀이된다. 이 같은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물론 가구나 자잘한 생활용품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쓰임새 있지만 요란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곁에서 변함없이 제 할 일을 다 하는 그런 것들이다. 일본에서 시작한 이 개념은 벨기에의 아트딜러이자 공간디자이너 악셀 브르보르트Axel Vervoordt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요하고 느긋한 삶을 집 안으로 끌어 들였다. 얼핏 부족해 보이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은 진짜 멋과 아름다움, 삶의 진정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짚어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색실과 사탕 항아리가 가득하던 할머니의 다락 안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내 평온함이 찾아오듯 말이다.
와비사비에 대한 설명이 장황해진 이유는 최근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과 그 결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New Romance』는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 즉 도시에 살면서도 날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삶의 태도와 방향을 뒷받침할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측면에서 러스틱 라이프는 서로의 매력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로맨스와 다름없다. 책은 소박한 농가의 순수한 매력, 시골집의 편안함에서 영감을 받은 로맨틱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인다. 부드럽고 독특한 색채의 천연소재, 그에 어울리는 액세서리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컨트리 하우스부터 스위스식 오두막 산장 샬레Châlet까지, 남다른 깊이의 인테리어 디자인 속에 깃든 우아함이 강조된다. 미완성된 목재가 마치 몽환적인 고대의 느낌을 불러오는 듯도 하다. 진흙으로 마감한 벽은 짙은 흙 내음과 함께 야외의 공간의 밝고 시원한 공기를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 고전적인 선과 전통적인 질감은 부드럽고 정교하다. 바라보고 있자니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현대적인 물건에 길들여진 우리의 취향에도 독특한 감각으로 어우러진다.
『New Romance』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화가, 스타일리스트, 소설가 등, 자신만의 이야기로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골집을 취재하여 엮은 책이다. 따라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뿐 아니라 자기 손으로 집을 꾸미려는 모두에게 소품과 가구 선택의 팁, 혹은 손쉬운 가구 제작 사례, 그 외 시골스러움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요소들로 창의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메타버스의 세상이 도래한 지금, 우리의 삶은 오히려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쫓는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야기가 서린 물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오브제, 거친 느낌이 그대로 남은 회벽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멋스럽게 주름이 새겨진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독서를 하거나, 밋밋한 벽에 그림을 그려본다거나, 산책 중 꺾어 온 야생화를 예쁜 유리 병에 담아보기도 하고, 작은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보며 러스틱 라이프의 길로 천천히 스며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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