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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름표, Ex Libris

에디터: 김지영 사진: 그림씨

‘이름표 붙이기’는 내 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다. 연필이나 공책, 가방 등에 정갈하게 이름을 적은 견출지를 붙이고 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오른다.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향한 애정,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얽히고설킨다. 단지 이름표를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책의 이름표인 장서표는 조금 더 특별하다. 단순히 이름만 적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하나하나 의미가 숨어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책의 주인을 마주할 수 있다. 장서표는 주로 서양에서 사용한 책의 이름표로 영어로는 ‘Book-plate’, 라틴어로는 ‘Ex Libris’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장서표에는 ‘~의 장서에서’라는 뜻의 ‘Ex Libris’를 주인의 이름, 상징적인 그림과 함께 그려 넣는데, 주인의 기호에 따라 문구나 책을 구입한 년도 등을 추가한다. 크게는 명함, 작게는 우표 정도의 크기가 일반적이고, 책 표지 뒷면이나 면지에 붙인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대통령이나 유명인들이 장서표를 만들어 사용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서표는 쉰스테트 가문의 담당 사제였던 요하네스 크나벤스베르크Johannes knabensberg의 것이다. 대략 145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는 이 장서표에는 꽃을 입에 물고 있는 고슴도치가 그려져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장서표에 ‘Lgler’라고 적힌 글자는 고슴도치라는 뜻의 독일어 ‘Lgel’과 비슷하다. 인쇄술과 제지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15세기 이전 책은 소수의 귀족이나 수도원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토록 귀한 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장서표다. 그래서 초기 장서표를 살펴보면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이나 장식을 곁들인 경구와 이름을 넣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15세기 이후에는 책을 소장하는 대중이 점차 늘어났고, 그만큼 장서표의 수요도 많아졌다. 장서표 제작 역시 15세기 이후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직접 그리거나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더 많은 책에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장서표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의 장서표가 등장했다. 이전에는 가문의 문장이나 경구를 적는 정도였다면, 이제 주인의 초상, 풍경, 도서관 모습 등을 담기도 했다. 루이 15세 치하 프랑스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우의적 내용이 담긴 장서표가 돌아다녔고, 18~19세기 아르누보 예술가들은 화려한 무늬나 장식, 누드 인물을 사용하는 새로운 장르의 장서표를 유행시켰다. 취향과 유행을 따라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서표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직업도 생겼다. 원래 어떤 기술이나 문화가 퍼지면 그것을 다루는 직업이 꼭 생기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에 곁들여 장서가의 직업과 취향이 반영된 장서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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