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 2019
Call Me by My Name
Editor. 최남연
넷플릭스+에어컨+아이스 커피와 함께라면 이번 여름, 문제없어요.(찡긋)
매년 6월, 전 세계에서 성 소수자 인권의 달Pride Month을 축하하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1969년 6월 28일 시작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뜻인데, 특히 올해 50주년을 맞아 더 뜻깊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이 나왔다고 해서 뮤직비디오를 봤더니 <퀴어 아이> 출연진을 포함한 성 소수자 카메오만 주구장창 등장해 당황했다면 이 때문이다.) 성 소수자라고 하면 대부분 게이나 레즈비언을 떠올린다. 가장 초반에 등장한 말이고 그만큼 이제 대중적으로 알려진 덕분일 테지만 사실 성 소수자의 범주에는 훨씬 더 많은 정체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퀴어’라는 포괄어가 널리 쓰이는 추세인데, 그래서 퀴어가 누구냐 묻는다면 재빨리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오늘은 『LGBT+ 첫걸음』이라는 책과 함께 ‘퀴어’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이름들을 만나볼까 한다.
『LGBT+ 첫걸음』은 자신을 퀴어로 소개하는 유튜버이자 작가인 애슐리 마델이 “LGBTQIA+ 정체성과 용어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를 제공하고자 쓴 책이다. 여러 관련 단체와 당사자 모임의 자문을 거쳐 출간했으며 2017년 말 국내에 번역됐다. L/G/B/T, 이후 등장한 Q/I/A(퀴어 혹은 질문 중인/인터섹스/무성애자), 여기에 속하지 않는 더 많은(+) 정체성을 총망라해, 에이젠더Agender나 데미섹슈얼Demisexual 같은 생소한 용어까지 만나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번역서 중 하나다. 각 용어와 함께 해당 정체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의 이야기를 덧붙여 생동감을 더했다.
저자가 ‘용어집’을 표방하며 쓴 책답게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단어도 모두 수록하고 있는데, 이런 신생(?) 용어를 제외하고 ‘+’ 영역에서 그간 많이 사용돼 온 말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젠더가 없다고 생각하는 에이젠더,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가졌다고 느낀다면 양성적이라는 뜻인 안드로진Androgyne,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 바깥에 본인을 위치시키는 논바이너리Nonbinary, 낮은 정도로 성적 끌림을 경험하는 그레이로맨틱Gray-romantic, 감정적 유대를 깊게 맺은 사람에게만 끌림을 느끼는 데미섹슈얼 등. LGBTQ, I, A를 포함해 언급한 모든 정체성은 상징 깃발을 갖고 있다. 지면에 몇 개를 소개하며, 더 많은 깃발을 보려면 구글에 ‘Pride Flags’를 검색해보길. 대망의 ‘퀴어’는 시스젠더나 이성애자가 아닌 모든 성 소수자를 아우르는 말이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두 부류의 독자를 염두에 뒀다. 본인의 정체성을 탐구 중인 퀴어 당사자와 정체성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을 얻고 싶은 연대자들Allies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친근한 말투와 흥미로운 정보 덕분에 술술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는데, 당사자 인터뷰에서는 잠깐씩 멈춰서야 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얻기 전 스스로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았고, 혼자 ‘옷장 안에서’ 앓았다. (커밍아웃한다는 표현은 ‘옷장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언어가 없으면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길을 잃는다. 『LGBT+ 첫걸음』은 이런 좌절과 고립에서 벗어나 우리 손에 소수자 정체성을 기술할 수 있는 이름들을 쥐여주는 책이다.
<퀴어 아이> 출연진 중 한 명인 조나단 반 네스는 6월 10일 잡지 『아웃』에 실린 인터뷰에서 “항상 ‘게이 남자’로 불려왔고, 나 역시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이제는 나 자신을 젠더에 순응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에게도 타이틀이 있다는 걸, 이런 이름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했다.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 외에 선택지가 더 있다는 걸 알면 개인은 자유로워진다. 『LGBT+ 첫걸음』이 누군가에게는 넓은 선택지로 향하는 첫걸음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조나단처럼 다른 이가 붙여준 이름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내 이름을 발견해 보길. 연대자라면 자신의 성향이나 선호에 대해 더 섬세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프라이드의 달에, 연대와 축하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