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4
Airplane Books
Editor. 신사랑
여행이 잦아지는 시기인 연말연시, 그저 설레는 마음으로만 떠나기에는 장거리 비행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징징대는 아이의 울음 소리, 몇 시간이고 가시지 않는 기내식 냄새, 그리고 3~4시간은 기본인 경유지 대기 시간까지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은 좌석과 웅웅 대는 비행기 엔진 소리도 몰입도 높은 한 권의 소설과 함께라면 충분히 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비행기 책’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첫째, 지나치게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을 것. 둘째, 적당하게 상업적인 통속소설이지만 너무 짧지 않을 것. 셋째, 읽을 때는 매우 흥미롭지만 다 읽고 난 후 오랜 여운이 남아여행에 방해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는 공항에서 쉽게 구매해 도착한공항에 놓고 가도 아깝지 않을 저렴한 가격까지 갖춘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비행기 책’일 것이다. 바쁜 일상과 고단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떠나는 여행, 삶에 지쳐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었다면 이번 기회에 재미있는 책 한 권 사 들고 비행기에 올라보자.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경찰도 거짓말을 하고, 변호사도 거짓말을 하고, 증인도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도 거짓말을 한다. 재판은 거짓말 경연장이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판사도 알고, 심지어 배심원도 안다. 그들은 법원 건물 안에 들어설 때부터 앞으로 거짓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는 것은 거짓말을 듣겠다는 동의와 같다.” -본문 중
마이클 코넬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고심하지 않고 쉽게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범죄 스릴러의 마스터다. LAPD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코넬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화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원제 링컨 변호사)의 원작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탄환의 심판』은 바로 이 『링컨 변호사』의 주인공 미키 할러 시리즈 제2탄이면서도 해리 보슈와 또 다른 시리즈 주인공인 기자 존 맥커보이를 출연시켜 코넬리 마니아들에게 확실한 팬 서비스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긴박감 있는 법정 스릴러들이 모두 그렇지만, 500쪽이 넘는 분량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흡인력 있게 술술 읽히는 이 책은 재미와 함께 현실적이고 진지한 사회범죄에 대한 내용을 능숙하게 진행해 나간다. 코넬리는 『탄환의 심판』에서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가어떻게 충격적인 과거에서 벗어났고, 지금 어떻게 싸우고있는지를 간결하지만 날카로운 묘사와 흥미진진한 대화로진행시키며 독자들이 마지막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적절한 텐션 조절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게다가 스펙터클한 법정 장면과 클라이맥스의 반전들은 왜 코넬리가 마스터의 칭호를 받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심심한 장시간 비행에 쓸데없이 빙빙 둘러대며 허튼 수작 하지 않는 속도감 있는 스릴러물을 원한다면 『탄환의 심판』을 추천한다.
“로빈과 마찬가지로 코모란 스트라이크 역시 지난 24시간 동안 자기 인생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운명의 여신이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차림의 전령을 보내 앞으로의 인생은 시궁창이 될 거라 조롱하는 모양이었다.” -본문 중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유명세와 그간의 성공을 등에 업지 않고 오로지 작품성 하나만으로 인정받기 위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 있다. 코모란 스트라이크라는 군인 출신 사설탐정이 영국 톱 모델의 갑작스럽고 의심스러운 죽음을 파헤치는 탐정 스릴러인 『쿠쿠스 콜링』은 역시 J.K. 롤링다운 디테일 가득한 상황 묘사와 생생한 캐릭터들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느낌 충만한 추리소설이다. 기존의 스릴러물들과는 달리 긴박감보다는 묘사와 배경 구축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의 장점은 이야기 배경인 런던의 거리와 장소를 그림같이 묘사해 독자들이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사건의 전개보다는 오히려 두 주인공의 성향을 깊이 있게 표현해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전적 탐정소설임과 동시에 트렌디한 패션지의 감각적 쾌락까지 갖춘 『쿠쿠스 콜링』은 탐정 스트라이크와 조수 로빈 사이의 팽팽한 케미스트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새롭고 파격적인 소설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기본 구성 이 매우 탄탄하고 짜임새가 정교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있고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그려지는 런던 거리의 분위기에푹 빠져 기내 안의 탁한 공기는 잠시 잊어버리고 다른 세계로의탈출을 가능케 해 줄것이다. 참고로 후속편인 『실크웜』도 올해성공리에 출간됐으며국내에서는 11월 말부터 만나볼 수 있다.
아무리 지루하고 불편한 비행기 안이라 해도 소설 속 상황에 푹 빠져 있기보다는 가볍고 부담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논픽션계의 ‘다빈치 코드’인 『괴짜경제학』을 소개한다. 경제학 책이라고 해서 난해하다거나 지루한 내용일 것이라 상상한다면 완전히 오해다. 상식적인 통념을 깨고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다양한 인센티브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책은 치밀한 통찰력과 과학적이며 설득력이 강한 논증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유도하고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한 기발한 논리를 제시한다. 저자 레빗은 사회적 현상이야말로 경제학적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교재라고 말하며, 또한 실제로 원인과 결과를 입증할 수 있는 경제학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입거하여 레빗은 ‘괴짜경제학’을 통해 범죄학자는 왜 범죄율이 줄어드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왜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교사의 일부는 왜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돈은 왜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까?” 등의 기발한 질문들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명석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러한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는 질문들과 『뉴욕타임스』의 기고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더브너의 글이 만나 완성된 『괴짜경제학』은 다른 경제학 책들에서 결코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의구심과 유쾌한 해설로 어쩌면 소설보다 더 쉽게 읽혀 내려가고, 누구나 쉽게 경제학에 접근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의 공통점, 낙태 합법화가 범죄율을 줄였는가? 등의 어쩌면 황당한 질문들의 답이 궁금하다면 이번 여행길에 『괴짜경제학』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