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8
페미니즘이 뭐예요?
Editor. 최남연
불편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터넷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올 한 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 중 하나는 페미니즘 아닐까. 그만큼 원래 관심 있던 사람은 물론 모든 사람의 눈과 귀에 한 번쯤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올랐을 한 해였다. 미투 운동, 서울시장직에 출마한 페미니스트 후보, 탈코르셋 운동 등등. 페미니스트로서 이런 현상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쏟아질수록 오해 역시 확산된다는 점은 썩 반갑지 않다. ‘이퀄리즘’이니, ‘여성우월주의’니 하는 표현은 모두 잘못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주의로 번역하나 대부분 원어를 발음 나는 대로 쓴 ‘페미니즘’을 그냥 사용한다. 한국어가 아니어서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 물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 답은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본인이 지지하는 노선이나 방향에 따라 더 좁게, 혹은 더 넓게 정의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내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됐고, 왜 계속하게 됐는지, 그냥 ‘내 얘기’를 해볼까 한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정답에까지 가 닿진 않더라도, 형체를 그려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내 이름의 한자는 사내 남(男)과 우물 연(淵)이다. 다음으로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랐던 조부모님의 흔적이다. “넌 이름 뜻이 뭐야?”라고 물어오면 차라리 모른다고 했다. 아마 자녀가 셋이면서 딸 둘에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막내아들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서울로 대학을 왔다. 전공으로는 언론정보학을 선택했다. 기사 하나로 소외된 곳에 불을 비추는 영향력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고, 이때부터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여성학 수업 하나는 꼭 듣고 졸업해야’ 한다는 학교에 왔고, 선배들의 조언을 어명처럼 받들어 시간표를 짜던 저학년이었으므로, 여성학 교양 수업을 하나 들었다. 수업은 일단 재밌기도 했지만 내 경험과 의문이 설명되며 언어를 얻는 짜릿한 시간이었다. 왜 여자아이 이름에 ‘세계 최고가 되어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물에서 남자아이가 나온다’는 한자를 썼는지, 그 전에 왜 그렇게 아들이 필요한지, 어째서 아들만이 제대로 된 자녀여서 아들 못 낳은 며느리는 얼굴을 못 들고 다녔는지. 왜 여대에 간다고 했을 때 “재미없겠다” 소리를 들었는지, 왜 여성들 간 우애는 상상되지 못하는지 설명이 됐고 납득이 됐다. 또, 그전까지는 미처 몰랐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이유 없는 차별들과 마주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같은 일을 해도 낮은 임금을 받는 상황은 당장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내가 겪게 될 일들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선택할 수도 없는, 아니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성별이 이렇게 개인의 삶에 장애물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여성학을 복수전공했다. 지금도 동네 책방, 시민대학 등에서 페미니즘 수업이 열리면 찾아가 배우고 있다. 부족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글도 쓰고 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뭐냐고 묻는다면 실은 나도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입문’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급한 마음에서 어려운 책만 찾아 읽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평소 좋아하던 『배움에 관하여』의 저자 강남순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 구입했다. 바로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이다. 어린이책이어서 처음에는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믿고 보는 저자인 만큼 이 책에서도 배울 점이 있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책을 배송받아 페이지를 넘기며, 의외로 피부에 와닿는 문장을 여럿 발견해 밑줄을 몇 번이나 그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한마디로 말해 ‘여자도 인간이다’라는 또렷한 목소리랍니다. 여자도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 아니냐고요? 그래요, 이토록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던 거예요.
그렇다, 페미니즘은 ‘여자도 인간’이라는 목소리다. 인간Human은 남성Man이었기 때문에, 여성도 인간임을 새삼 주장하는 운동이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슬로건은 유효하다. 여전히 여성은 정상 시민에서 배제되고, 때때로 인간이 아닌 자궁으로 간주된다. 일례로, 임산부석은 오늘의 여성이 아닌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대안적인 인식론이고, 여성의 종속이며 성별뿐만 아니라 차별의 여러 기제들에 도전하려는 이론이자 실천이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는 저 한 줄이다. 나처럼 잠시 중간 정리가 필요한 페미니스트라면, 혹은 알찬 내용으로 가득찬 쉬운 페미니즘 안내서를 찾고 있던 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인사를 한번 받아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