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8
나
Editor. 박중현
사적으로 고른 책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불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당분간 한국문학을 더듬습니다.
미스터리는 대상이 실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실제로 있는데 알 수 없다는 데 본질이 있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실재하는 ‘A’가 어떤 신비나 수수께끼, 불가사의에 싸여있을 때 A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된다. 재밌는 것은 알 수 없다는 부분이다. 지식의 문제가 아닌 것은 물론, 진실이 숨겨지거나 오해로 가려진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아예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분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스터리한 존재는 다시 경외 혹은 배척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 일부
인간에게 영원한 미스터리 중 하나는 그 자신일 것이다. ‘자아’로 불리는 그것은 내 것임에도 필연적으로 타인 속에서밖에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며 미스터리하다. 그렇기에 자아를 탐색하는 실제적 질문은 고상하고 우아한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찌질하고 절박한 ‘내가 왜 그랬지?’ 쪽이다. 이는 달리 말해 자아의 탐색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아찔한 물음의 상황이 사랑이든 고통이든 내가 대상이자 주체일 때 통찰은 불가능하다. 호소할 뿐이다.
자신이왜사는지도모르면서
육체는아침마다배고픈시계얼굴을하고
꺼내줘어머니세상의어머니 안되면개복수술이라도해줘
말의창자속같은미로를 나는 걸어가고 (…)어디까지가야
푸른하늘베고누운 바다가 있을까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일부
이 호소는 정돈될 수 없다. 냉정을 잃은 열광의 상태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감각, 의식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순간의 감각 또는 호소가 태생적으로 소통되기 불완전incomplete하다는 데 있다. 감각(감정)이 언어로 흐르면서 불가피하게 검열되고, 발화에 이르면 타인의 이해를 위해 허무하리만치 일반화된다. 인간이 말을 해도 외로운, 근본적으로 외로운 이유기도 하다. 위 인용한 시를 쓰게한 시인의 감각이 무언지 그 자신이 아니기에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일상에서는 “힘들어”따위나 장황한 설명으로밖에 내어놓지 못한다. 그것도 논리니 호흡이니 윤리니 따박따박 맞춰가며. 그런데 정말 그게 ‘나’라고?
그대와 내가 온밤내 뒹굴어도
그대 뼈 속에 비가 내리는데
—‘부끄러움’ 일부
그대 의식의 문 뒤에서 숨어 우는 자유와
달빛에도 부끄러운 생채기마저 이야기하라.
—‘내력’ 일부
최승자의 첫 시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러한 시적 표현들은 비단 개인 내면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계나 ‘이 시대의 사랑’에 가 닿기도 하고, 인간 보편의 굴레 혹은 본질을 건져 보여주기도 한다. 때론 되레 그 본질들이 갖는 함축성만큼 짙고 붉은 몇 마디만으로. 시 ‘부끄러움’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허무’ ‘깊은 슬픔’ 등을 설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할까. 시 ‘내력’에서 보여주는 ‘의식과 행동의 괴리’ ‘소극적 자아’ ‘상처 어린 부끄러움’ 등을 설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이 초월적 보편성은 남을 위해 썼기 때문이 아니다. 철학자가 오직 그 자신의 고민이기에 철학하듯, 시어(詩語)는 오직 시인(詩人)을 위해 부화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분명 이기적 존재다. 하지만 세상엔 분명 그 이기적 언어로밖에 이해받을 수 없는 ‘나’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