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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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August, 2018
시작부터 주인공 죽이는 만화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종종 SNS 애니메이션 페이지에 올라오는 ‘매드무비’를 즐겨보는 편이다. 원작자의 음성, 게임, 그림,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개인이 편집, 합성, 재생산한 미디어를 매드무비라고 하는데, SNS 활동은 이것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랄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시청하는 편이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잔혹한 장면 탓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많다.
4년 전, 학교 동생이 “정말 잔인한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호들갑 떨며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적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 『원피스』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밀짚모자 해적단이 2년 후 다시 만나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려던 찰나였다. 평소 같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장르지만, 5분에 한 번씩 “봤어?”’라며 계속 연락이 오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시청했다. 제목이 ‘진격의 거인’이었다. “거인이 진격하냐? 유치하긴.” 비아냥대며 답신을 보내고 영상을 재생했다.
100년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들이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고, 평화로웠던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다. 인간은 살기 위해 원형으로 3개의 벽을 쌓고 그 중심을 ‘월 시나’, 중간을 ‘월 로제’, 바깥을 ‘월 마리아’로 지역을 나눠 생활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대형 거인과 갑옷 거인이 증기를 내뿜으며 나타나 월 마리아의 벽을 부수고, 바깥에 있던 거인들이 유입되면서 결국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 월 마리아의 생존자이자 주인공인 엘런 예거는 엄마가 거인에게 먹히는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하고 분노와 복수로 가득 차 친구 아르민, 미카사와 함께 조사병단에 들어간다.
희망 없는 세상이 이런 느낌일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데, 답이 없다. 민간인들은 도망만 치다가 거인에게 잡아 먹히고, 거인을 저지해야 하는 병사들도 속수무책 당하 기만 하고, 심지어 주인공 엘런 예거는 병사가 된 후 첫 출정에서 거인에게 잡아 먹힌다.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능력자’들이 몇 나오지만 주인공은 능력자가 아니다. 처참하게 팔 한쪽이 잘려나가 먹힌다. 그래서 결국 만화책을 찾아봤다. 애니메이션 3화 만에 주인공을 죽이고, 다시 살려내는 작가의 패기에 박수를 보내며 읽었다.
만화책은 더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하며, 꽤 비중 있다고 생각했던 캐릭터가 하나둘 사정없이 거인에게 먹히고, 여기저기서 거인화하는 인간들까지 속수무책 ‘떡밥’만 던져놓은 작가의 의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포탄을 맞춰도 죽지 않던 거인이 목 뒷덜미를 도려내기만 하면 맥없이 죽는 이유가 목 뒷덜미에 본체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부터, 특수한 능력을 지닌 거인은 몇 안 되며 이들은 모두 벽 바깥 대륙에서 왔다는 사실도 말이다.
작가는 그간 실마리 하나 보여주지 않았던 벽 바깥세상 이야기를 최근 풀어내며 4년간 열심히 던져둔 떡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드디어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세계관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일본 만화답게 작은 사건부터 큰 사건까지 인과관계가 확실해 단 하나도 허투루 일어나지 않는다.
P.S. 1권부터 읽을 예정이라면 엘런 엄마를 먹는 거인을 주목하고 25권까지 질주해보길 바란다. 엄청난 비밀이 드러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