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5
현실주의자들이 행복해지는 방법
Editor. 박소정
‘행복’처럼 낯설고, 난해한 단어가 또 있을까?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느껴질 뿐이다. 때문에 구체적인 것을 선호하고,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자들에게 행복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행복은 불가능한 꿈을 꾸며, 조금은 두리뭉실하게 사는 이상주의자들에게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현실주의자들이 행복에 다가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 작가는 동양철학에 행복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않는다고 했다. 힌트는 여기에 있다. 애초에 정해진 개념이 아니라 그 정의와 기준은 정하기 나름이라는 것. 이제까지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가 만든 기준에 시달려온 셈이다. 현실주의자들이 이상주의자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고 또 다가갈 수 있는 책 몇 권을 골라봤다. 아, 잠깐, 행복은 어디까지나 셀프라는 점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천부(天賦)의 잘못이 딱 하나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 이 천부의 잘못을 우리가 고집하는 한 (…) 이 세상은 모순으로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위대한 일에서든 아니면 하찮은 일에서든 이 세상과 삶은 행복한 존재를 돕게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런 까닭에 늙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거의 대부분 실망이라고 부를 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본문 중
사람들은 왜 드라마에 빠지게 될까? 드라마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운명의 상대나 대박 아이디어 같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SNS는 이런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놀라운 세상을 펼쳐준다. 누구는 지금 자소설에 한창 골머리를 앓는데, 친구 A는 유럽에서 먹방을 찍고 있고, 친구 B는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중이다. 드라마가 아닌 사실이기에 더욱 자극적이고 끊어내기가 힘들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유혹과 질투, 권태 등 악의 구렁텅이와도 같은 세상에서 “자신이 앓는 병의 원인을 모르는 병자”와도 같은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소크라테스, 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철학을 만날 수 있는데 중간마다 저자의 해석을 덧붙여 철학을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 속에서 만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기본적으로 슬픈 것으로 보고, 삶을 심사숙고하는 일에 삶을 바치기로 한 인물이었다. 괴테는 염세적이며 비관적이기까지 한 쇼펜하우어를 위해 “만약 그대가 인생에서 즐거움을 얻기를 원한다면 / 그대는 이 세상에 가치를 부여해야만 하네”라는 2행시를 바쳤다. 이에 쇼펜하우어는 감명받기는커녕 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샹포르의 글로 답했다 “사람들을 있지도 않은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두는 것이 더 낫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이 유치하여 생각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긴 ‘사랑’을 인간사에 있어 위대한 것으로 보고 진지하게 연구하였다. 그는 상대에 대한 환상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을 “완전히 새로운 개인이 형성되는 첫 순간”이라고 했다. 염세주의자에게서 사랑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되다니, 놀랍고 설레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 한 판을 떨고 왔는데도 어딘가 헛헛한 마음이 든다.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미주알고주알 주고받았지만, 그뿐이었다. 부딪치는 술잔에 맥락 없이 나오는 플레이 리스트, 동창의 결혼 소식까지 더해지면 나누고 싶었던 삶에 대한 고민은 목구멍 근처에서 맴돌다 쏙하고 들어가 버린다. 이럴 때 생각나는 책이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다. 러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또 부조리한 일들은 어찌나 많은지 새삼 느끼며 삶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는 일상의 문제부터 깊은 철학적인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쉬운 글을 쓰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를 설명한 뒤, 그럼에도 행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건넨다. 그는 ‘권태’에 관하여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에 대해 가르쳐줘야 한다고말한다. 현대의 교육은 무언가 경험하고, 놀이를 제공하는 등 자극이 넘쳐나는데, 실제 삶에서는 어떤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단조로운 시간을 버텨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중용’이 재미없는 이론일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많은 문제에 관한 한 정확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행복에 있어서도 ‘노력’과 ‘체념’ 사이의 중용이 중요하다. 여기서의 체념은 정복할 수 없는 희망에 근원을 둔 것을 말한다. 즉 비개인적이고 원대한 희망에 집중하다 보면 사소한 것들에 대해선 쉽게 체념을 할 수 있다고 전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세상이 불행, 병, 정신적 갈등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행복을 위해서 많은 불행의 원인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제목을 ‘Conquest of Happiness’라고 지었는데 이는 행복을 치밀하게 분석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청취자103X: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사귀기로 했습니다. 전 쓰레긴가요?
막말하는 DJ: 그럼 세상은 쓰레기장이게요. —본문 중
라디오 PD가 주업이며, 부업으로 DJ도 하고 있는 윤성현 PD는 청취자에게 DJ의 숙명과도 같은 따뜻한 위로의 말은 잘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치고받고 싸우며 미운 정이 든 친오빠처럼 따끔하면서도 현실적인 대답을 건넨다. 고민의 당사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걸 듣고 있는 다른 청취자들은 그의 직언에 고요한 새벽, 소리 죽여 킥킥 웃을 수밖에 없다. ‘새벽의 옴므파탈’ 혹은 의외로 따뜻한 ‘윤 이모’라고 불리는 저자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막말을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틀린 말을 할 바에야 욕을 먹더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책에서는 음악과 라디오를 축으로 여행, 일상, 취미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글을 읽다 보면 까칠할 것만 같은 그가 순수함 속에 자신의 생각을 고이 간직한 소년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신청곡으로 자주 받는데 거의 틀지는 않는다고 한다. 서른이 되면 찬란했던 20대가 끝장남과 동시에 세상을 이미 다 살아버린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에 대해 잘 공감이 가지 않기 때문이란다. 덧붙여 특별한 소수를 빼고는 20대에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찬란하긴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관계에 서툴고 방황하는 것이 20대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섹스 앤 더 시티’ 를 남성들에게 의무 상영할 것을 고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가 남성에게 주는 불편함을 이해하지만 이 드라마야말로 여성을이해하는 데 야동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시시해져 버린 감성 에세이에 치여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당신이라면 이 책이 한 잔의 탄산수같이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