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5
책을 통해 혼자 떠나는 여행
Editor. 지은경
모두가 떠나고 없는 빈 도시를 홀로 지
킨다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을 시원한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작가의 작품을 손에 들었다고 상상해보라. 진정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을 통한 여행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언어의 장벽까지 넘나들며 우리로 하여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일에 치어 살며 수고한 당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피서지에서 또 한번 휩쓸리기보다 책 한 권을 들고 당신 자신과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상상했던 그 이상의 흥미진진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고독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독은 외롭고 슬프고 불행한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고독으로부터 삶의 풍요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지를 말한다. 고독은 결국 자기 자신과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며 그를 통해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이끄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열망하는 것, 그리고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열쇠 같은 것이다. 삶은 때때로 까마득한 황무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뜻밖의 불행이 발목을 잡고 주저앉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자기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현실에 당당히 맞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고독의 힘’으로 이루어낸 자기 치유의 과정이다. ‘혼자’라는 것은 낙오가 아니다. 혼자임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안도감을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파묻힐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지만 그런 ‘나’는 진정한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은 고독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독을 상처로 여기지 않고 힘껏 껴안음으로써 고독이 더 이상 마음을 할퀴지 못하게 하는 힘에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 문학, 영화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사례로삼는다. 고독이 지나간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귀한 순간들이다. 누구나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작업장을 간직하고 있어서 언제든 마음대로 그곳으로 들어가 자유와 고독의 성을지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내 영혼은 멀리 남쪽을 향해 떠났다네.남쪽으로,우리 남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내 영혼은 멀리 동쪽을 향해 떠났다네.동쪽으로,우리 동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내 영혼은 멀리 북쪽을 향해 떠났다네.북쪽으로,우리 북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나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집으로 돌아오라. 집으로 돌아오라.내 영혼은 멀리 서쪽을 향해 떠났다네.서쪽으로,우리 서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로.집으로 돌아오라.집으로 돌아오라.” —본문 중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이자 멋진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그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게다가 이번 소설은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그는 아버지에 관해 쓰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익사한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을 둘러싼 갈등의 문제들도 그가 해결해야만 했던 숙제였다. “때가 오면 ‘익사소설’을 쓸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로서 쓰기 시작해 강 아래 물살에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낸 소설가가 단번에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그런 소설……” 작가는 소설가인 자신이 『익사』를 쓰기 전 갖게 되는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소설 『익사』는 전쟁 후 일본의 70년을 살아온 오에의 자전적 소설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홉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에 관한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소설가로 활동하는 50년 동안 그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해왔지만, 마음의 수련이 쌓이지 않았다며 차마 꺼내놓지 못했다. 그는 어느 한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를 알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밝힌 바 있었다. 실제로 그의 이전 작품들에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코 코기토의 입을 빌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소년은 어느새 죽음이 자신에게도 멀지 않았다고 느끼는 노인이 되었다. 과거의 아픈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춰냄으로써 작가는 잘 알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듯하다.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이해하는 일이었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돌아보는 일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우리는 풀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맞이해야 할 때가 있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괴롭고 슬프고 애통하고,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은,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든 간에 떠나지 못하는 존재들을 향한 알 수 없는 모든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가슴 뜨겁게 느끼게해준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나는 그다. 아버지다. 익사한 아버지. 그리고 나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본문 중
『불안의 서』는 포루투갈의 대표작가인 페소아가 쓴 가장 슬픈 책이다. 세상 사람들은 명성과 부, 편리함, 소음과 번잡함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곧 인생의 성공으로 여긴다. 페소아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과는 정반대의 것들, 즉 어둠, 모호함, 실패, 곤경, 침묵, 슬픔 등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괴로운 것, 슬픈 것, 어두운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삶에서 중요한 것들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 많은 것들이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인간의 의미 또한 그 안에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책은 포루투갈의 리스본을 배경으로 그곳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480편의 에세이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책의 순서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감정이 원하는 단어들을 찾아 읽을 수 있다. 여기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간, 삶과 죽음, 내면의 심리와 외부 세계 등을 주제로 다루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것들을 통해 작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 한국 소설가 배수아가 번역한 이 책은 읽는 내내 작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는 착각, 아니 고뇌하는 작가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것에도 굴복하지 않기, 어떤 인간에게도, 어떤 사랑에게도, 어떤 이념에게도. 항상 거리를 두고 독립을 유지한다.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진리를 믿지 않으며, 진리의 유용함도 믿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것이야말로, 생각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을 위한 정신적이고 내적인 삶의 올바른 상태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믿음, 이상, 여인, 직업, 이것들은 전부 감옥과 사슬을 의미한다. 존재란 자유롭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는 명예욕조차 우리가 그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순간 짐이 되고 만다. 우리가 뭔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자마자, 그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끈이 된다. 그러므로 절대, 끈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과 연결하는 끈조차도 거부해야 한다! 타인들로부터는 물론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