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사람을 보는’ 디자인 야마자키 료

에디터: 유대란 / 사진: Studio-L 제공

국가, 도시 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지역’과 ‘지역성’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다. 대도시의 주택지구상류화 현상(gentrification)의 폐해를 지적하는 주민들과 기고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시골마을의 버려진 공터나 외딴 폐허를 여가와 축제의 장으로 탄생시킨 지역민들의 소식이 세계 곳곳에서 들린
다. 국내에서도 최근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더 밀접하고, 일상이 소속된 작은 단위의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속성장 위주의 도시개발계획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지역의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있다. 이런 변화의 축에서 지역과 사람을 위한 커뮤니티 디자인을 선도해 온 야마자키 료를 인터뷰했다. 강연을 위해 최근 방한한 그는 일본의 Studio-L의 대표이자 『커뮤니티 디자인』과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의 저자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커뮤니티 디자인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도록 디자인의 힘을 빌려 그들의 활동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디자인이 전문 디자인과 아마추어 디자인으로 나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전문가가 열심히 디자인하면 할수록, 전문성을 내세울수록 시민들은 손님이 되어버립니다. 한편 아마추어 디자이너는 DIY나 ‘일요목수’(휴일에 집에서 여가활동으로 목수일을 하는 사람) 활동 등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마추어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디자인하는 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것을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아마추어가 혼자서 디자인하는 것도 아닌, 아마추어가 많이 모이고 거기에 전문가도 참여하여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일, 그것이 커뮤니티 디자인입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대상입니다. 공간을 리노베이션하는 것도 그렇고 거리의 미래 비전을 디자인하는 것도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물건을 만드는 것’ ‘보이는 것을 설계하는 것’으로 한정짓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문 디자이너가 하는 것만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민과 함께 디자인을 하고자 합니다.

한국 사회는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지역의 특징들이 사라지고 어디를 가나 똑같은 건물과 똑같은 비닐하우스를 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지역 환경과 마을 사업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기존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학과 단체에서도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과 운동을 여러 형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널리 고착화된 의식을 바꾸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할 것과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풍부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가가 외부에서 찾아와 “이런 일을 하면 이 마을은 건강해질 거예요”라고 조언하고 돌아가 버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마을의 당면 과제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조금씩 실천합니다. 그런 일을 조금씩 추진해 나가는 것이 커뮤니티 디자이너의 역할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화하는 방법,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법을 주민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면서 커뮤니티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들을 위한 교육은 어디에서 시작하며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요?
-계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년의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건축디자인과 조경디자인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전향했습니다. 최근의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으면 합니다. 올해 동북예술공과대학에 커뮤니티 디자인학과를 설립했습니다. 대학에서 4년간 커뮤니티 디자인을 배우고, 고향을 건강하게 하는 일을 목표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본 각지에 커뮤니티 디자인을 육성하는 교육기관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교육에서는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 활동을 비롯해서 아이스 브레이킹(새로운 사람끼리 어색함을 깨고 친근해지는 과정) 및 팀 빌딩(팀원들의 작업, 소통,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켜 조직의 효율을 강화하는 방법) 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동북지방의 재난 피해지역 현장에 나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하는 체험형 워크숍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것이 커뮤니티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대단한 경험이자 훌륭한 직업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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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신생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지역 몇 곳을 둘러보셨는데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 성미산마을은 도심 속 에코 빌리지로서 흥미로운 사례라 생각합니다. 에코 빌리지의 주민들이 인근 주민들과도 사이 좋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호감이 갔습니다. 단, 에코 빌리지가 추후 더욱 확장됐을 때, 이곳의 주민들과 인근에 사는 다른 주민들 사이에 소통이 여전히 원활할지, 의식의 차이가 생겨버리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수마을은 GUGA 건축설계사무소가 들어가 정밀조사를 하고 마을에 필요한 공간을 설계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모처럼 설계한 광장 중 하나가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완성된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면,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디자인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은 점점 인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지역에서 요구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역 주민 모두가 서로 의논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래예술공장은 공장 부지와 빈 공장에 아티스트가 들어가 독특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장주와 아티스트 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 또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마을의 미래에 대해 서로 심층적인 논의를 나누는 중요한 절차를 건너뛴 결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주의 청년몰은 독특한 사례였습니다. 오래된 시장 건물 옥상에 젊은이들이 작고 세련된 가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1층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사이좋게 지낸다고 합니다. 1층 점포의 임대료가 상승하거나, 임차인이 쫓겨나는 일이 더러 있어 젊은이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제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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