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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6

여기가 폭풍의 언덕이다

Editor. 유대란

몸에 나쁘고 후회가 예정된 일들에 투신한다.
소독차를 보면 쫓아가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위스키에 나물 안주를 먹을 때 행복하다.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민음사

임 모 작가의 막장 드라마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이다. 기상천외한 일들이 태연하게 펼쳐지는 그의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이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를 ‘리얼리스트’라 부른다. 막장의 대모가 쓴 드라마에서는 가끔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를 더러 건질 수 있다. 그중 ‘성격이 팔자다’라는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건 이성보다는 성격이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임 모 작가와 함께 요즘 『폭풍의 언덕』도 자주 떠올린다. 문학사에서 이 정도로 강렬한 성격의 인물들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한마디로 성격 파탄자들의 모둠 세트 같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폭풍의 언덕』은 유독 많은 문학자가 기질론을 들어 분석했다. ‘기질temperament’은 ‘성격personality’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정신적인 것과 함께 체질에 대한 이해가 결합한 개념으로, 기질을 빌어 이 작품을 해석하려는 영문학자들은 제목의 ‘폭풍의 언덕’과 언덕이 위치한 영국 북부의 기후가 작품을 탄생시킨 에밀리 브론테의 상상력과 작중 인물들에게 특수한 체질을 부여했다고 믿는다. 배경이 된 그곳에 가보면 연애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고 알려진 브론테가 어떻게 이런 강렬한 러브스토리를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원제목인 ‘Wuthering Heights’의 ‘wuthering’이란 단어도 특별하다. ‘wuthering’은 영국 북부에서 쓰는 방언으로 ‘폭풍의’ ‘폭풍이 부는’이라고 번역되는데,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으르렁거리는 강한 바람 또는 그런 소리’라는 의미도 있다. 북부 지방에서 이 단어를 쓸 때는 ‘폭풍’이라는 기후 현상을 지시하기보다 요란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곳을 묘사할 때 의성어 같은 뉘앙스로도 쓰인다.
작중 배경이 된 곳은 영국 웨스트요크셔의 하워스라는 작은 마을로, 그런 바람이 부는 곳이다. 작가 브론테는 평생 이곳에서 살다가 단명했다. 낮은 구릉이 펼쳐진 이곳은 항상 강한 바람이 불어 나무가 높이 자라기 어렵고 들풀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 북부의 어둡고 우중충한 기후 덕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한 이곳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없던 광기도 생길 것 같다. 어릴 적 가본 그곳은 무시무시한 인상을 남겼다. 대자연에 느끼는 경이로움이나 인간 존재의 덧없음 같은 가슴 벅찬 심상이 드는 게 아니라 불안정함 그 자체였다. 머리 위 낮은 구름이 언제라도 비를 뿌릴지 모르겠고, 고도는 낮지만, 구릉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아랫마을까지의 거리가 가늠이 잘 안 되는 외롭고 무서운 곳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자란다. 캐서린의 아버지 언쇼가 타향에서 데리고 온 고아 히스클리프는 언쇼의 아들 힌들리에게 모진 학대를 당하지만, 캐서린과는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낸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신분에 대한 미련 때문에 부유한 집안 출신의 에드거와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그것을 안 히스클리프는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폭풍의 언덕을 떠났다가 부유한 신사가 되어 돌아와 힌들리, 캐서린, 에드가에게 끈질기고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다.
브론테의 문장은 아름답고, 전개는 촘촘하며, 배경은 인물들에 더할 나위 없는 개연성을 불어 넣는다. 나는 작중 인물들의 악랄할 정도의 열정과 개성을 추앙했다. 하지만 이제 인물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사뭇 달라졌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서로의 광기에 공모하고, 자신을 비롯한 주변 모든 인물에게 씻을 수 없는 스크래치를 남기고 비극을 맞는데, 기질로써 이들의 행보와 성격을 이해하려던 영문학자들에게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짐승 같은 기질에 굴복한 이기적인, 말 그대로 ‘짐승 같은’ 이 두 사람은 서로를 해하고, 남을 해하고, 결국 외로운 말로를 향해 돌진하는데, 그런 그들을 어느 때보다 경멸하게 되었다. 내가 처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현실이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폭풍의 언덕과 지나치게 닮았기 때문에. 타고난 환경과 그것이 빚어낸 감정적인 기질을 들어 그들을 이해해주기에 나는 너무 피로하다. 화가 난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랬다.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패배의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삶의 기쁨을 기록한다고. 지금은 절실히 기쁨을 읽고 기록하고 싶은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