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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7
좀비 아포칼립스의 인류 문명의 위기
Editor. 한진우(메디치미디어 편집자)
새해 들어 금연을 결심했지만 16시간 만에 “마약 중독자를 얕보지 마!”라고 외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연의 대가로 구입했던 플스VR을 아내가 팔아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작은 벽난로 앞에서 그것은 등을 돌린 채 뭔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여보세요”라고 말을 걸자 뒤를 돌아보는데, 눈에 초점이 없고 피부는 군데군데 썩어들어가 있었다. 비척비척 다가온 놈이 내 목을 물어뜯었고, 이윽고 나를 먹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는 좀비 서바이벌 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처음 해봤을 때의 일화다. 지금은 좀비를 주제로 한 소설, 영화, 게임이 많이 출시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좀비는 낯선 존재였다. 이후 좀비는 일개 마을의 비극 수준을 넘어 국가와 전 세계 그리고 인류 멸망이라는 소재로 발전해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가 생겨났다. 한때 ‘멸망’ 시나리오의 단골 소재는 핵전쟁이었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산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라는 말처럼 핵전쟁을 통한 멸망 과정은 얌전한 편이었고, 요즘은 오히려 멸망 이후 막장이 된 세계를 그리기 위한 장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최고이자 최악의 발명으로 비롯된 좀비 아포칼립스 속 국가 유지는 대자연의 안티테제로서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로 활용되곤 했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인류가 악다구니를 써가며 멸망으로 치닫는 모습에서 극적인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가, 제도, 인간 본능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쌓아왔던 문명이 사실은 얼마나 취약한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소개할 소설 『세계대전Z』에 극명히 드러난다. 작중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좀비 창궐로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 이때 정부와 군대는 국민 안전을 챙기기보다 훗날 국가 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탈출시키기로 한다. 그 수단은 충격적이게도 민간인들을 좀비에 미끼로 내주고 시간을 버는 것이다. ‘레데커 플랜’이라 불리는 이 정부 유지 계획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결과적으로 ‘국가 명맥 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했고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도 유사한 작전을 통해 정부를 유지했다. 오로지 효율적인 ‘생존’만을 추구한 결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유지라는 국가 본연의 목적은 완전히 저버렸다.
비록 소설 속 내용이지만, 선장이 몇몇 선원과 함께 배를 버리고 도망가는 격인 이 계획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리고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우리는 잘 안다.
한편으로 좀비 아포칼립스는 개인의 이기심과 왜곡된 자본주의의 결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훌륭한 소재가 된다. 예컨대 작중 좀비가 창궐한 초기에 피해를 키운 ‘팔랭스’라는 좀비 바이러스 백신은 사실 ‘브렉’이라 불리는 사기꾼이 만든 가짜 백신이었다. 브렉은 인간의 공포를 이용해 떼돈을 벌었고 제약회사의 주가는 수십 배 올랐다.
재미를 위해서 작중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전국에 창궐한 거대 좀비 떼와 인천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가 패하고 지방 곳곳에서 군대가 무너져 국가 소멸의 위기에 처했으나 한국판 레더커 플랜인 ‘창 독트린’으로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가 재건에 성공한다. 북한은 충격적이게도 모든 북한 인민이 거대 지하 벙커로 숨었다고 한다. 중국의 승전을 마지막으로 좀비 전쟁이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도 북한 인민은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았으며 2,300만 명의 인구가 지하에서 전멸하거나 좀비로 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 현실에서 좀비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죽었다가 되살아나 인간을 먹는 괴물’로서 좀비의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부정된다. 사후경직은 근육의 운동을 제한하고 신체의 부패는 뇌의 신경계 장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미국 전략사령부가 대규모 좀비 발생 사태를 대비해 ‘콘옵8888’이라는 민간인 구출과 피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카트리나 사태 등을 겪은 미국 정부의 생존주의 전략을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파생된 여러 계획 중 하나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좀비라는 괴물의 공포를 포함해 국가 시스템의 취약함에서 초래되는 오싹함을 느끼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 『세계대전Z』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