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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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7

시를 읽는 일과 방법

Editor. 박중현

중요한 것은 결과.
나아가게 하는 것은 과정.
올바르게 하는 것은 문득 떠올릴 만한 미소.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 지음
지혜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시’ 전문

대답이 자신 없는 물음들이 있다. “결혼 언제 할 거야?”(가족) “우리 언제 봄?”(친구) “나 살 빠진 것 같지 않아?”(불특정 다수) ‘오늘부터 다이어트한다매?’(마음의 소리) 등등. 대개 모르겠거나 서운해할 것 같거나 고민이 되어 망설여지는 것들이다. 이 질문도 어렵다. “요즘 어떤 장르의 책이 제일 잘 팔리냐?” 서점에 근무하거나 도서 MD라도 된다면 피부로 느낀 수치에 근거해 대답할 수 있으련만… 사실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을 제외하곤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무슨 책이 잘 팔리긴 하던가?’라는 1차적 셀프 알고리즘부터 시원스레 돌파할 자신이 없다. “응, TV나 영화에 나온 거.” 이건 뭔가 아닌 것 같고. 질문을 다음과 같이 뒤집으면 조금 만만하다. “그럼 무슨 책이 제일 안 팔려?” 대답으로 “시집”을 들이밀면 대충 무난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일까? 간단하게(혹은 냉정하게) 접근하자면 사람들이 그다지 필요로 하고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시의 존재의의에 태클을 걸려는 게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응하는 재화를 필요로 하는 상품군의 선호도가 낮다면 어찌 됐든 수요가 낮다는 소리일 테다. 그리고 결국 ‘뭘 얻을 수 있는데?’라는 반문으로 연결된다. 그렇담 생각해보자. 우리는 시에서 뭘 얻는다고 봐야 할까. 현대인이 으레 낼 수 있는 답은 아마도 이런 식일 것이다. “뭔가 정화되는 기분?” “힐링 받는 듯한 느낌?” “삶을 여유롭게 하는 쉼표…?” 나는 이러한 막연한 표현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잊고 있던 ‘감정’이라 생각한다. 쳇바퀴 돌아가듯 삭막한 일상에서 떠올릴 여유 없고 소비될 기회 없어 잊고 지낸 인간 보편의 인간성이다. 괜스레 글의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14년 4월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고 비통하게 하는 사고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연일 보도되던 뉴스와 핑계 같은 일상에 나도 모르게 젖어있던 무감각이 우연히 접한 한 편의 시에 비로소 깨어나 눈물 흘렀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현대인과 시집이 친하지 않은 와중에도 조용히 회자되다 어느새 ‘국민 시’라는 별칭까지 얻은 작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다. 그 화제성에 매체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두루 공감할 만한 쉬운 시어와 구조, 풀꽃이라는 시각적 자연물을 바탕으로 한 비유 그리고 인간에 관한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위의 시 ‘풀꽃’을 비롯, SNS상에서 사람들 입에 활발히 오르내린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사실 독특한 구성이다. 나태주 시인이 권두 시인의 말에서 언급하듯 ‘독자가 골라준’ 시집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특별하다. 그 때문이라 해야 할지, 책은 연시집(戀詩集)에 가까운 인상이다. 대부분 사랑에 관한 감정이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특정 감정을 조금 과식한 기분이었지만, 어쩌랴. 현대인의 가슴이 무엇에 목마르고 배고픈지에 대한 방증인 것을. 달리 말해 시집의 시들이 건져 올리고 있는 감정과 생각들, ‘사랑’ ‘인정과 자존의 욕구’ ‘투기되지 않는 진정성’ ‘흘겨보지 않는 배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마음의 보석들”은 현대 한국인의 마음의 코드라 해도 무리 없어 보인다.
앞서 꺼냈던 시(시집)의 상품성 얘기를 마무리 지을까 한다.
궁극적으로 시집을 읽고 얻어야 하는 건 받아 적어놓고 두고두고 왜야 할 어떤 명문장이 아니다. 왜? 가성비가 떨어지니까. 교훈이나 주제는 수능 때까지로 충분하다. 시의 독보적인 가치는 읽기 전엔 없던(잊고 있던) ‘색(色)’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영혼이 성숙하는 마음 숨결의 부풂이다. 가르침이나 잠언, 자기계발서의 ‘조항’처럼 거센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도 부러지지도 않아야 할 굳센 깃발이 아니다. 겹겹이 어우러짐에 오히려 화음을 더해 나가는 선율이다. 그러니 단시간에 잡아먹을 듯 애쓰며 읽진 말자. 내 속도로 읽은 뒤 내 언어로 이름 붙여 떠오르는 날 꺼내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름들이 쌓이면 나만의 감정 서가가 되리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 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