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8
고독과 죽음의 관점이 가져다주는 것
Editor. 지은경
제35호 책(Chaeg)의 주제인 ‘죽음’을 한 달 내내 생각하다 보니 우울증세가 찾아온 듯하다.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무無의 바다
그리고 나는 내 집과 함께 내 안의 어떤 것도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대들보 같은 것이 있다.
우리 삶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삶에 숨어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모여 자신과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것일까? 외과 의사였던 프레드리크 벨린은 의료사고를 낸 후 스웨덴의 한 섬에서 오랜 시간 혼자 생활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의 집이 몽땅 불에 타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른 곳에서 배를 타고 온 지인들이 불을 끄려 했지만 집은 송두리째 타버리고 만다. 목숨만 가까스로 건진 그는 곧 경찰에게 방화범으로 의심까지 받게 된다. 그는 잠옷 바람으로 낡은 차를 운전해 은행으로 향한다. 만 크로네를 찾은 후 건너편 제과점으로 간다. 급하게 사야 할 목록이 아주 길었다. 냅킨에 적는 일을 그만둔 그는 앞이 막막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에 70세란 나이는 결코 이르지 않았다. 당장 입어야 할 옷을 산 후 고무장화를 사기 위해 신발 가게로 갔다. 하지만 가게에는 이탈리아산 고무장화가 전부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스웨덴산 고무장화였다. 결국 그는 사지 않았다. 철물점에도 스웨덴산 장화는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보트 창고와 캠핑카, 개방형 보트, 그리고 낡은 자동차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딸을 생각했다. 새삼 눈물이 흘렀다. 루이제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존재도 모르고 있던 딸이다.
늦게서야 만나게 된 딸,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은 조심조심 행동한다. 그리고 화재를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기도 하다. 마음 속에선 여러가지 멋진 꿈을 펼쳐보지만 현실이라는 무게와 윤리의 벽에 눌려 겨우겨우 시간을 보낸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문제와 고민을 안고 하루하루를 고독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사실 그들 모두가 비슷한 삶이지만 그 누구도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같지만 다르고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인간의 관계, 그 안에서 인간은 끝없는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우리는 무엇이 옳다고 믿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은 주인공은 극심한 고독에 휩싸임과 동시에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고독과 죽음의 관점에서 얼마나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다. 주인공은 그들이 맞이했을 죽음과 고독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아직은 남아있는 생을 살아가 보려 한다. 이번에는 전혀 새로운 시작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스웨덴산 장화를 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삶에서 끝없는 변화를 꿈꾼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그 변화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삶은 우리가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때 갑작스러운 변화를 가져다주는 심술을 부리곤 한다. 그래서 수동적인 흐름에 몸을 한동안 맡겨야 할 때도 있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다. 또 어쩌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작용하기도 한다. 삶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나 섭리 같은 게 존재한다면 그 변화의 흐름을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삶을 살아내는 용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존재할까? 만약 갑작스러운 변화가 우리 삶에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원하는 장화를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