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학살, 우리 시대의 보코하람을 찾아서 Slaughtering of the Book, BOKO HARAM
글: 지은경, 박명화, 김진수 / 에디터: 지은경
나이지리아의 무장 단체 보코하람은 지난 6월 나이지리아의 마을들을 습격, 주민 400여 명을 학살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200명이 넘는 여학생들을 납치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 무장 단체의 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신이 자신에게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포주가 되라는 명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이들의 만행은 이들이 저지른 행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보코하람: 서양식 교육은 죄이다.’ 보코하람의 ‘하람’은 아랍어의 하람과 할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의 성서인 코란에 명시된 금지 항목에는 하람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이는 금지된, 혹은 죄라는 뜻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의 반대말인 할람은 신의, 좋은 것, 또는 허용된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흑과 백의 논리에 따라 이 두 단어는 매우 명확하게 분류된다. 반면 보코하람의 ‘보코’는 좀 더 복잡한 뜻을 지닌다. 공식적으로는 ‘서양 교육’을 의미하지만 이의 근본을 파헤치면 영어의 ‘책’, 즉 Book 에서 파생되어 변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교육과 문화, 문명, 지식, 지혜, 계몽 그리고 빛나는 우리의 미래이다. 인간의 뇌를 깨우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항상 중심의 자리를 지켜왔다. 책은 인류의 발자취인 역사를 기록해왔고 그를 통해 인류는 보다 이상적인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의 무장단체는 책이 죄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에 경악한다. 그리고 이는 시대정신의 말살이며 문화와 문명의 말살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들춰보면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보코하람들을 지나쳐왔고 현재도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집단의 목소리와 기억으로서의 책과 도서관은 문화와 정체성의 중심이다. 특히 여러 종류의 장서 가운데 한 부분으로서 글은 어떤 집단의 독특함을 유지시켜주고, 극단주의자들의 동화정책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힘이 된다. 극단적인 정치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책과 도서관이 정권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만, 국가를 은밀하게 훼손시키려는 국가의 적들에게도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책의 학살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충동적인 범죄의 총합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문제 해결의 도구다. 책을 학살했던 사건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신의 권위를 침범한다며 종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의 저서가 불타고 신대륙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고대 남아메리카의 고귀한 문서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와 아시리아, 고대 이집트, 고대 중국, 즉 인류가 역사를 시작한 시점부터 이미 책의 학살은 또 하나의 큰 역사의 기록으로 우리 인류와 함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우리가 사는 지금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2001년, 하느님의교회 추수회의는 미국 피츠버그 근처에서 헤밍웨이, 칼릴 지브란의 작품을 비롯해 신을 모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는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같은 해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교도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담은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미국 도서관협회 웹사이트에는 지구상에서 어떤 장서가 불타 없어졌는지를 그날그날 알려주는 코너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사라진 책의 역사’를 쓴 뤼시앵 폴라스트롱은 2003년 7월, 이 웹사이트는 이라크의 도서관 파괴 소식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종교, 책을 말살하다 고대의 책 파괴는 대개 종교적인 이유에서 자행되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존재했지만 그때의 정치는 아직 종교와 분리되지 않았었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아멘호테프 4세는 스스로 아크니톤이라고 부르며 수도를 옮기면서 그 이전 아몬의 사제들이 지녔던 저작을 파괴하도록 명했는데, 그것은 그 이전의 전통적인 종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집트를 침략했던 이슬람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파괴할 때의 명분이나, 중세 기독교가 책을 파괴할 때의 명분 역시 종교적인 이유였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 파괴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아랍이 이집트를 정복한 뒤, 칼리프였던 오마르는 640년에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고 한다. ‘만일 그리스 저작물이 신의 책과 일치한다면 쓸모가 없는 것이며 보존할 필요도 없다. 만일 일치하지 않는다면 간악한 것이니 없애버려야 한다’. 진시황이 우가의 책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도 법가의 사상이나 한비자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인데, 그것 역시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그가 갱유, 즉 역사상 유례 없는 대학살을 왜 자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서에 대해서만큼은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분서로 인하여 진시황 이전의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잿더미 속에 사라졌다. 인류 문명을 향한 치명적 테러는 진시황만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이런 분서가 예외 없이 저질러진 때가 있었다. 2~4세기 초기 기독교는 신성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그노시스파로 불리는 영지주의는 당대 세계의 중심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톨릭을 위협했다. 최종적으로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은 가톨릭이 승리했고, 그노시스파의 모든 종교적 저작물들은 이단이란 이름 아래 망각의 불길 속에 내던져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동굴에서 2000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그노시스의 파피루스가 발견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신국론과 고백록으로 중세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를 닦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엔 그노시스파(마니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