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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사상과 염원의 결정체, 문자도
에디터: 김지영
사진제공: 다할미디어
우리 선조들은 문자도가 부적처럼 영험하다고 믿었다. 한자는 예로부터 주술적인 힘을 지닌 문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한자를 그린 문자도에도 그 힘이 전해진다고 생각했다. 현대에서는 미신이라 말하는 누리꾼들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행복, 지인의 행복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까지 비난할 순 없지 않을까?
중국 신화에서는 중국 황제의 사관인 창힐이 새 발자국에서 힌트를 얻어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가 글자를 만드니 하늘에서는 곡식의 비가 내리고 밤이 되니 귀신들이 통곡했다. 하늘은 한자의 창안을 축복했지만, 귀신들은 이를 두려워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가 주술적인 힘을 지녔다는 믿음이 신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유물에서도 한자에 주술적 힘이 담긴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자의 모태 문자로 알려진 갑골문의 주요 용도 중 하나는 주술이었다. 거북 등껍질이나 짐승 뼈에 구멍을 뚫거나 불로 지져 생기는 갈라짐을 보고 길흉을 점쳤고, 그 내용을 복조 곁에 새겨 넣었다.
결국 한자는 태생부터 주술과 관련된 문자다. 한자를 그린 문자도 역시 문자 형상 속에 봉해져 있는 의미가 주술적인 역할을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복福’자를 그린 문자도는 행복을 가져다주고, ‘수壽’자를 그린 문자도는 오래 살게 하며, ‘녹祿’자를 그린 문자도는 출셋길을 열어주고, ‘충忠’자를 그린 문자도는 충성심을 높이게 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문자도는 1610년 전라남도 나주 남평현 현감인 조유한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유정에게 받아 광해군에게 바친 < 백수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자도의 형식은 큰 글자 안에 작은 글자 100개를 넣는 삽입형 구성이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현재의 나열형 구성은 조선 후기 중국 청나라로부터 새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 백수도>가 조선에 들어오자 이와 비슷하게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자도가 유행했다. 이를 ‘백복백수도’라 불렀다. 무명작가가 그린 < 백복백수도>는 목숨을 뜻하는 ‘수壽’ 100여 자와 행복을 소망하는 ‘복福’ 100여 자를 그려 넣고 새, 개구리, 신선, 꽃, 가지, 책, 그릇, 호리병 등의 자연 이미지들을 함께 그려 넣어 풍성히 했다. 이 그림이 유난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림 자체에도 활자를 새겨넣어 의미를 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