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당신이 머문 자리 위에서,
시인 서효인
에디터: 박소정
사진: 신형덕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시 ‘여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는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살피며 그 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기억과 역사를 읽어낸다. 지난날 분노와 저항에 섞여 있던 반성의 기운이 시집 『여수』에서 고스란히 얼굴을 드러낸다. 시인이자 편집자로, 남편이자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성이란 결국 관용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우리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도 두세 차례 옮겼죠. 20대에 썼던 두 번째 시집까진 문학과 시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사회와 열심히 꾸려가는 삶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쓴 것 같아요.
시인을 꿈꾸지는 않았어요. 현실적으로 시인을 꿈꾸기란 쉽지 않죠.(웃음)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문예부 활동을 통해 내가 잘하는 게 글쓰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시나리오나 드라마 작가처럼 글 쓰는 직업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대학 가서 공부를 좀 해보니 성격이 급한 편이라 그런지 시가 맞더라고요. 아무래도 다른 문학작품에 비해 빨리 쓸 수 있고, 피드백도 빠르니까요. 현재 저에겐 시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크지만, 총체적으로 문학계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전체 63편의 시 중 지명을 제목으로 하는 시가 50개 정도니까 많은 편이긴 해요. 처음에는 우연히 어느 곳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두 편 쓰다, 계속 쓰게 됐어요. 한번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평을 가게 됐는데, 합정동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역 근처에 있는 결혼식장까지 찾아가는 행로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부평에서 출퇴근하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배경을 그리고 그 위에 제가 느꼈던 이미지나 감각을 입혔죠. 이렇게 ‘부평’이란 시를 쓰고 나니까 이런 작업을 해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한 공간에 그래프처럼 얽힌 시간과 역사, 의미와 같은 것을 짚어보고 싶기도 해서 응축된 형태인 시로 옮기게 됐어요. 참고로 시집에 나온 장소들은 여행보다는 출장을 다녀오거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방문한 곳이 대부분이에요.
제가 문학, 철학, 역사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인문학부 남학생이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깊게 공부하지는 못했고, 그냥 좋아하는 수준이에요. 그중에서도 제가 생각하는 역사는 요즘 유명 강사가 나와서 말하는 역사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민족이다’와 같은 거시적인 역사가 아닌 시간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 작은 알갱이로부터 시작하는 역사죠. 예를 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저 자신이나 타자가 역사적 흐름에 놓임으로써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치는 이런 미시적인 얇은 선들을 바라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