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우리 삶에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소설가 이유
에디터: 이수진
사진: 신형덕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현재를 견디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힘겨운 상황 속에 놓여있어도 틈틈이 반전을 기다리며 자기 나름의 견디는 힘을 구축해나간다. 『소각의 여왕』으로 2015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유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 『커트』에는 뚝뚝 끊어지는 길 위에서도 조각조각 길을 이어나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바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다.
어릴 때 < 환상특급>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했어요. 현실 바깥에 있는 세계를 동경했죠. 그걸 보고 나서 저한테는 그런 세계가 실제 세계와 늘 같이 있었어요. 혼자 있을 때 그와 같은 공상을 많이 하기 때문에 현실 바깥의 세계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 세계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내가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장르 소설이 많이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 소설들은 꼭 써보고 싶어서 썼어요.
「꿈꾸지 않겠습니다」를 예로 들면 거기서는 인간이 아니라 환경 자체가 전복돼요. 그렇게 ‘분리’하는 일을 어릴 때부터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와 또 다른 ‘내’가 맺는 관계인 거죠.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서 분리되고 싶었던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고 할까요. 순수하고 순결한 ‘나’는 현실을 잘 살아가고, 또 반대의 ‘나’는 자유롭게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세계를 꿈꿨어요. 살아가면서 조금 버거운 일들이 있었는데, 이런 상상을 통해 위안을 받곤 했어요. 그런 시간들을 자연스럽게 보내다 보니 소설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밤은 후드를 입는다」와 「가방의 목적」을 보면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분리된’ 세계가 나와요. 그 세계에선 서로를 관찰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여러 명, 혹은 사물로 분리해 놓으니 자연스레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분리되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 썼는데 나중에는 작품 속 인물과 제가 서로를 관찰하고 바라보면서 결국 저의 현실을 바라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어요. 되짚어보고 다시 돌아보는 식의 반복이 재밌었어요.
신춘문예 등단작인 「낯선 아내」보다 「커트」를 먼저 썼어요. 사실 두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낯선 아내」가 당선이 됐어요. 「커트」를 처음 쓸 때는 등장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었어요. 결국 조금 바꾸긴 했지만 쓰면서 속이 좀 후련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던 시절에 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