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 도쿄 시부야에는 매년 수만 명의 도쿄 시민들이 모인다. 그들은 만화 속 주인공이나 괴물의 형상을 따라 분장을 하거나 코스튬을 입고 거리로 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변장한 캐릭터라 상상하고 그 안에 몸을 내맡기며 밤을 누빈다. 변장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고 자유로우며 솔직해 보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실과 꿈은 서로 뒤바뀌기 시작하고 결국엔 그 경계조차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을 탈피해 다른 누군가가 되었을 때 정직해지는 것일까?
시부야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이자 가장 큰 횡단보도가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그 사이에는 어떠한 커뮤니케이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지만, 그 안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인지하지 않는 곳. 그래서일까?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로써 시부야가 등장하는 까닭이. 변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찬 시부야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하고 모든 행위와 사건들의 충격이 흡수될 것만 같은 인상이 뿜어져 나온다.
타로 카리베(Taro Karibe)는 도쿄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는 사진작가다. 그는 현대 사회의 구조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본 사람들, 그중에서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도쿄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는 그는 영국 『사진저널』과 『텔레그래프』, ABC뉴스, 『허핑턴포스트』, CBS뉴스 등에 사진을 게재하고 있으며, 게티이미지의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