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캠핑, 파장을 일으키다

에디터 : 김산환, 서승범, 이현상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생경한 환경에서 먹고 자야 하는 캠핑은 어렵고 불편한 일에 가깝다. 버튼 한 번으로 불이 켜지는 시대에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부채질을 해가며 모닥불을 붙여야 할 때도 있고, 푹신한 침대 대신 냉기가 올라오는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순간도 맞이한다. 이렇게 번거로운 캠핑이 대중적인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캠핑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활동이 된 것일까? 캠핑이 불러온 파장은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경제, 환경, 문화 등 사회 다방면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사서 고생하는’ 이색적인 취미 정도로 인식되는 캠핑이 일으킨 변화를 꼼꼼하게 짚어본다.?
1-캠핑 인류
캠핑의 사전적 정의는 ‘산이나 들,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거나 그런 생활’이다. 조금 더 풀어보면 집과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 머물며 휴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현대인은 항상 마음 한구석 에 자연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인공의 장벽이 없는 자연 속에서 쉬고 싶은 욕망, 캠핑은 이런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동경과 갈증을 풀어준다.
캠핑은 수렵채취 생활을 하던 원시 인류부터 시작됐다. 농경사회로 접어들어 집을 짓고 정착해 살기 전까지 원시인들에게는 대자연이 집이고 생활의 무대였다. 이들은 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동굴이나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텐트에 거주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몽골의 초원이나 아프리카 사막의 주민들은 유르트(yurt)나 게르(ger)와 같은 텐트를 이용해 살아가고 있다.
원시 인류에게 캠핑은 생존의 문제였다. 비나 눈, 바람 같은 자연의 위협과 목숨을 노리는 맹수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초기 인류는 동굴과 같은 자연적인 은신처를 이용했다. 그러나 자연적인 은신처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들이 있다. 먼저 수렵채취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에 항상 적당한 은신처가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은신처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수렵채취 환경도 무용지물이다. 또한, 자연적인 은신처는 추위를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원시인들은 좀 더 안전하고 아늑한 공간을 갈망했고, 그 갈망은 사냥한 동물이나 가축의 가죽을 이용해 집(텐트)을 짓는 능력으로 진화한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생존을 위한 캠핑은 여전히 필요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유럽을 정복하던 로마제국 시절이나 칭기즈 칸이 세계를 손아귀에 넣던 중세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몇 년에 걸쳐 계속됐다. 병사들은 텐트를 집 삼아 야전에서 생활했다. 이들에게 캠핑 기술을 익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쟁과 캠핑은 지금도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군대에서 받는 교육 가운데 캠핑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군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는 곳을 캠프(Camp)라 부른다. 이 밖에도 실크로드를 오가는 대상들이나 탐험에 나선 모험가들, 며칠씩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 등은 일을 위해 캠핑을 해야만 했다.
캠핑이 레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워싱턴 거너리교(校) 교장 F.W 건(Frederick William Gunn)은 캠핑의 교육적 가치에 주목해 아이들에게 야외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배울 수 있게 했다. 그 후 자연 속에서 배우고 즐기는 캠핑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1885년 YMCA가 캠핑대회를 열었고, 1901년에는 최초의 캠핑클럽이 창설됐다. 1910년대 유스호스텔이 미국 전역에 생겨나면서 캠핑도 중흥기를 맞는다. 1933년에는 최초로 국제캠핑회의가 열렸다.
유럽의 경우 독일에서 시작된 반더포겔(Wandervogel) 이 신호탄이 됐다. 반더포겔은 ‘철새’라는 뜻으로 청년들의 도보여행을 통해 조국애와 인문학적 견문을 넓히자는 운동이다. 1901년 반더포겔의 전국조직이 결성되면서 도보여행과 함께 캠핑문화도 급속하게 번졌다.
2-선함에 기대다
레분에 들어가려면 홋카이도 북쪽 끝에 있는 왓카나이에서 배를 타야 한다. 왓카나이는 공항이 있는 치토세시에서 35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다. 며칠 자전거 타기 딱 좋은 거리다. 이동 수단과 잠자리를 정하면 여행 계획의 8할은 정해진다. 다음으로 잠자리는? 말해 뭐해, 캠핑이지. 레분의 꽃을 보러 가는 여행이지만 여행의 대부분은 길 위, 아니 안장 위에서 보내야하니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되겠다. 닷새 동안 섬을 향해가고, 닷새 정도 섬에서 쉬었다가, 닷새 동안 간 길을 돌아오는, 혹시 몰라 덧붙인 예비일 사흘을 포함하는 일정이다.
“굳이, 돈 쓰고. 굳이! 그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뭐야.”
친구가 물었다. 고생 앞에 ‘굳이’를 두 번씩이나 넣은 건 자전거든 캠핑이든 둘 중 하나만 해도 되지 않느냐는 뜻이었겠지.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캠핑을 하러 가는 거라. 목적엔 이유가 없는 거라.
캠핑에 필요한 장비는 최대한 간단하게 챙겼다. 부피와 무게의 ‘빅3’인 텐트, 침낭, 매트리스 외에 물을 끓일 작은 포트와 초소형 가스버너, 수저와 랜턴이 전부였다. 밥을 사 먹겠다는 의미다. 캠핑장에서 해먹는다 해도 일본은 라면과 도시락 천국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행 셋째 날 바다를 만났다. 해 질 무렵 루모이 도심의 언덕에 올랐을 때 멀리서 다가오던 바다는 아름다웠다. 캠핑장은 좁은 도로를 두고 바다와 마주하고 있었다. 텐트를 친 뒤 빈 자전거를 타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의 여행을 간단히 기록하고 텐트 너머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잠들었다. 이튿날부터는 내내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예정이었다.
눈을 뜨니 5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자전거에 묶으니 6시 50분. 스트레칭을 하고 7시부터 달리면 된다! 자전거를 도로에 내리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앞바퀴는 멀쩡한데 뒷바퀴는 바람이 반쯤 빠져있다. 하, 내 넋도 한숨에 섞여 빠져나간다.
그래, 이 정도 이벤트는 있어야 여행이지. 마음을 추스르고 패니어를 내리고 뒷바퀴를 빼서 튜브를 꺼내 확인하니 실펑크가 있었다. 오케이, 펑크패치 쓰는 날이 오는군. 펑크 부위를 깨끗하게 닦고 고운 사포로 문지른 뒤 패치를···, 어라, 본드가 없다. 남아있던 넋마저 새어나갔다. 10시에 문을 여는 자전거 점포까진 2킬로미터 남짓. 알겠지만, 자전거란 안장 위에선 천하의 발명품이지만 끌기엔 참으로 빌어먹을 것이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손보는 점포에 도착했다. 묵직하게 짐이 실린 자전거를 본 아저씨는 가볍게 웃으시면서 나를 맞아주셨다. ‘내 너의 여행을 되돌려주지.’ 수리는 어렵지 않았다.
튜브의 펑크를 때우는 건 아주 쉽다. 중요한 건 펑크의 원인을 타이어에서 찾아 제거하는 거다. 아저씨는 안경을 이마로 올리고 햇볕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타이어를 까뒤집어 맨손과 눈으로 훑었다. 한참 뒤, 타이어의 실펑크를 기어이 찾아내 보여주셨다. 원인이 된 이물질은 빠지고 없음을 확인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수리비는 1,000엔. 만 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여분의 튜브를 사고 출발하기 전에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는 동안 아저씨는 패니어를 쓰다듬으며 이젠 펑크가 나지 않을 테니 즐겁게 여행하라며 웃으셨다. 선물처럼, 귀국을 위해 자전거를 분해할 때까지 자전거 점포를 들를 일도, 가져간 휴대용 펌프를 쓸 일도 없었다. 물론 진짜 선물은, 아저씨를 만난 네 시간의 경험이었다.
레분에 가기 전 리시리에 들렀다. 역시 왓카나이에서 배를 타고 간다. 섬 한 바퀴가 50킬로미터 남짓인데 자전거로 돌기 좋다 하니 빼놓을 수 없지. 리시리섬에서 이틀 묵고 레분으로 갈 계획이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이자 레분섬의 첫 끼니를 뭐로 할까 고민하다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일본 최북단의 식당이라니 로맨틱했다. 부두에서 6킬로미터쯤 달려 식당에 도착하니 인터넷에서 봤던 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저씨가 나와 계셨다. 자전거를 세우고 내리니 난감한 표정이시다. 영업하지 않는 날이라고 한다. 나도 난감하다. 근처에 다른 식당이나 편의점이 있는지 물으니 부두 쪽에 가면 많다고 했다. 안다고, 나도. 거기서 왔다고. 여기서 먹으러.
괜찮다 말씀드리고 웃으며 돌아섰다. ‘어디서든 점심은 진짜 맛나겠군. 근데 그게 어딜까.’ 생각하며 자전거를 돌려세우는데 아저씨가서 계셨다. 한 팔을 든 채로. ‘까딱, 까딱’.
오라는 건가? 가니, 식당 안 자리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를 번역기에 입력하는데, 가스불이 켜지고 웍이 올라갔다. 얼음 물로 더위를 식히자 내 앞에 불맛 입힌 돼지고기 볶음과 고소한 고로케, 달큰한 양파 볶음 그리고 신선한 양배추, 토마토, 오이와 마카로니가 곁들여진 커다란 접시가 놓였다. 그보다 조금 작은 접시엔 하얀 밥에 검은깨가 톡톡 뿌려져 있었다. 양배추 한 올, 튀김가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맛도 맛이고 고마움도 고마움이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얼마죠?” “노노, 투데이 클로즈. 노 비즈니스, 노 머니. 하하.”
잠시의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고맙다는 말씀밖에 드릴 것이 없었다. 배고픈 짐승은 내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지셨던 걸까. 까맣게 그을린 덩치 큰 사내의 눈빛과 표정에서 절실한 허기를 보신 모양이다. 식당을 나와 다시 페달을 밟는데 눈물을 찔끔거렸던가.
3-캠핑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바깥 텐트, 또는 임시 숙영 시설에서 잠을 자는 캠핑은 원래 탐험을 목적으로 시작된 야외 활동이다. 미국 서부 활극으로 예를 들면 말이 세워져 있고, 장작불 옆에 주인공이 잠을 자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텐트 없이, 혹은 아주 간단한 덮개만으로 야외에서 잠자는 것을 ‘카우보이 캠핑’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드넓은 황무지와 초원을 개척하기 위해 캠핑을 했으니 탐험 목적의 캠핑을 한 셈이다.
탐험 목적의 캠핑은 근현대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등산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가장 의미 있는 사건 중 하나는 1786년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7m)을 초등한 일이다. 이 등정은 현대적 의미의 등산이라기보다는 수정채광과 학술적인 탐사가 목적이었다. 몽블랑초등을 적극 후원하고, 이듬해 그 자신도 직접등정을 했던 소쉬르(Saussure)는 산악인이나 탐험가가 아니라 자연과학자였다. 캠핑은 이렇게 인류의 지적, 공간적 탐험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인간이 발명해낸 대부분의 기술문명은 최초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원자폭탄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²이 이론적 기초였다. 이 방정식이 원자폭탄이 되고, 발전소가 되고, 의료기술에 쓰일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탐험을 목적으로, 탐험의 영역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시작된 캠핑도 전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캠핑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대가온 것이다.
캠핑이 탐험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활동으로 발전한 시기는 1960년대이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베트남 전쟁과 반전평화운동이 공존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68혁명, 미국에서는 히피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캠핑이 탐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몇몇 퍼스트 무버(first mover)들이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들어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글로벌 아웃도어 시장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가 1966년, 미국 최대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마못(Marmot)이 1971년, 지속가능성 어젠다를 선도하는 파타고니아(Patagonia)가 1973년에 창립되었다. 이런 산업계의 변화를 반영하여 세계 최대의 아웃도어/스포츠 용품 박람회인 ISPO(Internationale Fachmesse für Sportartikel und Sportmode)가 1970년, 미국 아웃도어 산업 전시회 OR Show(Outdoor Retailer Show)가 1982년에 처음 개최됐다.
지구상에는 사실상 탐험할 만한 미지의 영역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북극점과 남극점에 인간의 발길이 닿은 것은 100여 년 전의 일이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인간에게 정상을 허락한 것도 벌써 70년 전의 일이다. 이제 탐험은 지구 행성을 벗어나 일론 머스크와 NASA에게 맡겨졌고,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시광선 너머의 더 큰 탐험을 위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날마다 정보를 보내오고 있다. 우리는 그저 SNS나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는 탐험의 소식들을 보고 들으며 캠핑을 즐기면 될 뿐이다. 캠핑은 일부 탐험가들의 활동에서 벗어나 가장 대중적인 여가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사실은 캠핑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광범위해졌음을 의미한다.
탐험이 거세된 캠핑은 이제 누구나 즐기는 말랑말랑한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소비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3년 동안 급성장한 솔로, 혹은 소가족을 위한 생활소비재들이 포장재만 바뀐 채 그대로 캠핑용품으로 변신하였다. 비상등으로 쓰일 법한 지나치게 밝은 랜턴이 캠핑용 전등으로, 공구함이나 우유 상자로 쓰이던 플라스틱 박스가 캠핑박스라는 이름으로, 야외 행사나 현장 구호시설에서 쓰이던 대형 보냉 스토리지가 캠핑용 냉장고나 음식 컨테이너로 새삼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캠핑용 먹거리는 더욱 호사스러워졌다. 그저 삼겹살 수준이던 캠핑용 음식은 다양한 밀키트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풍성해졌다. 캠핑박스가 더 커졌으니 거기에 마음껏 밀키트를 채워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휴식과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외국의 캠핑 문화를 더 선진적인 것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각종 음식들의 경연대회를 치르는 ‘먹방’ 캠핑 문화가 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캠핑용이라는 특성상 포장재가 더 두껍고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긴다. 쓰레기 분리수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캠핑장이라고 해도 가정에서만큼 제대로 분리배출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우유갑이나 소주팩 등은 접착면을 뜯어서 물로 세척한 후 종이류로 배출해야 하지만 캠핑장에서 이런 권장안을 제대로 지키기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음식은 국물이 많은 특징이 있는데, 각종 찌개와 전골요리는 특히 인기 있는 캠핑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대부분 국물이 남아 생활하수로 쏟아버린다. 또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수거한다고 해도, 적당한 양을 준비해서 모두 소진하는 게 더 친환경적이다. 많은 음식은 더 많은 화석 연료를 필요로 한다. 올여름 폭염이 유난했고,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데, 한 번쯤은 나의 캠핑 문화가 과연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지, 친환경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달간 참을성 있게 금연했으나 어느 술자리에서 방심하고 입에 문 담배 때문에 금연에 실패한 사례를 많이 보고 듣는다. 일상적으로 몸에 밴 친환경적인 생활 습관이 하룻밤 사이 캠핑장에서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September23_Topic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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