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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Gestalten

지난 한 해, 팬데믹에 대처하는 새로운 관행 중 하나로 자전거 붐이 있었다. 자전거 타기는 자유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주었다. 특히 유럽 각국들의 봉쇄 조치는 자전거 판매의 극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신상품 자전거는 몇 달 동안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가 늘었고, 도시에서는 자전거 이용자를 수용하기 위해 도로를 재정비해야 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자전거 위의 자급자족 여행을 통해 주변 환경에 눈 뜨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라고 감탄도 한다. 자전거가 데려다주는 길에는 그것만이 간직한 풍경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강물이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버리면서 거느리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 · 우마차로 · 소로 · 임도 · 등산로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고 몸밖으로 흘러나간다. 생사는 자전거 체인 위에서 명멸한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_김훈, 『자전거여행』 중
『Bikepacking』을 공동 편집한 전문 바이크패커 스테판 아마토Stefan Amato는 영국에 기반을 둔 자전거 여행 플랫폼 파니에르Pannier의 운영자이자 투어 큐레이터이며, 런던에서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한반도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묘사한다. 그는 자전거 위에서 모든 풍경을 몸 안으로 끌어당기고, 생태학과 지리학, 역사학과 인류학, 종교학을 종횡하며 인문학의 정수를 선보인다.
“한강에서, 자전거는 상류에서 하류로 물과 함께 흘러내려가야만 강과 서울의 표정을 바르게 읽어낼 수 있다. 암사동에서 김포대교에 이르는 동안 22개의 다리 밑을 지난다. 한강 다리 구간마다 대도시의 풍경과 산세가 바뀐다. 잠실 구간에 이르면 멀리 북쪽 들판 끝으로 도봉산의 선인봉 · 만장봉, 북한산의 백운대 · 노적봉 · 인수봉의 연봉이 모습을 보인다. 산과 강 사이에서 대도시는 너무 커서 산이 쫓겨가는 형국이다.” _김훈, 『자전거여행』 중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떠나려면 짐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행 중 거듭되는 짐 꾸리기 연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필요한 것과 아닌것들을 구분하게 된다. 그렇게 삶은 점점 가벼워진다. 어느덧 미니멀리스트가 된 당신은 여러 날에 걸친 배낭여행과 산악자전거를 결합한 최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 자전거는 해발 1,100미터 고지에서 태백산맥을 넘게 될 것이고, 그 꼭대기에서부터는 내리막과 오르막을 수없이 헤쳐나가면서 북동진한다. 그리고 산맥 저편 마을에서는, 살아서 돌아온 연어떼들 우글거리는 남대천의 물줄기를 바짝 끼고 달려서 이윽고 동해에 당도할 것이다. 흰 자작나무숲에 내리는 가을의 빛과 산간마을들의 삶의 기쁨과 슬픔 속으로 바퀴를 굴려서 나아간다.” _김훈, 『자전거여행』 중
다양한 자전거 여행 경험을 가진 프랭크 반 렌Frank van Rij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전거는 합리적인 시간대에 대륙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빠르지만 흥미로운 것들을 놓치지 않고 많이 볼 수 있을 만큼 느리다.” 자전거를 묘사한 문장 중 이토록 적절한 문장이 또 있을까? 자전거 여행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라고, 도착은 급하지 않다고. 주변의 모든 길들로 페달을 밟는 자전거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생생한 여행 철학을 구축하게 한다.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므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 올 수 있었고, 모든 길은 그 위를 가는 자가 주인인 것이어서 이 강가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과 친인척과 이웃은 흔히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가 길을 오가며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 늙은 길은 가(街)가 아니고 로(街)도 아니며 삶의 원리로서의 도(街)이다. 자전거는 이 우마찻길을 따라서 강물을 바짝 끼고 달렸다.” _김훈, 『자전거여행』 중
January22_Inside-Chaeg_02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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