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은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의 첫 번째 주제였다. 몸이라는 언어로 표현되는 수많은 의미들, 몸이 내뿜는 분위기, 움직이는 몸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몸은 가장 많이 거
론되고 대상화되는, 인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시대마다 예술작품 속의 몸은 이상과 욕망을 반영했고, 예술가가 찾으려는 질문들에 부응해왔다. 이렇듯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몸의 형태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몸을 바라보며 느끼거나 탐구하는 방향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개인의 몸만큼이나 깊고 다양한지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몸의 미학, 인체의 신비, 성적인 욕망 너머 몸의 본질적인 존재가치, 그리고 몸과 영혼의 연결성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사고하는가? 우리는 스스로의 몸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작가 김용호가 탐구한 ‘MOM’으로부터 ‘몸’에 관한 새로운 질문의 문을 열어본다.
1990~2000년대의 과도기적 상황, 서울은 온갖 산업과 야망, 화려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김용호는 당시 사진과 패션 산업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대한민국의 모델과 배우 대부분이 그의
카메라 앞을 거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잡지 『GQ』를 위한 누드 화보를 찍으면서 인간 몸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한 성찰 없이 산업의 수레바퀴에서 한없이 소비되는 몸들을 마주하며 ‘이건 아닌데…’라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사진의 중심에 섰던, 그것도 산업과 사회에 의해 소비되는 몸을 중점적으로 포착하던 사진작가가 그 구조에 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한편 그가 그 중심에 서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역설은 탄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의 논리를 비롯한 수만 가지 조건 아래 몸은 갖가지 다른 형태로 소비된다. 그의 사진에서 몸은 성적 대상화나 에로티시즘 영역에만 국한되어 소비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노동, 필요한 노동과 불필요한 노동, 몸에 깃드는 정신 등 훨씬 더 큰 범위에서의 몸의 소비가 포함된다. 몸과 정신의 관계 또한 살펴보게 된다.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정신도 가능하며, 몸이 없는 영혼은 한낱 바람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몸과 정신은 하나다. 제 아무리 위대한 영혼일지라도 가녀린 몸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의 위대함에 비해 몸을 폄하하는 분위기는 역사에 오랫동안 만연했다. IMF 전후,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의 많은 몸들이 사회에서 내몰림을 당했다. 부와 빈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가장 빈번하게 욕망과 소비의 대상이 되었던 몸은 거세게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대부분 근대에 결정되었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생활 양식, 삶의 태도, 그리고 몸에 대한 생각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량생산, 산업혁명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변화했으며 몸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소비되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사람의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많이들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몸을 바라보는 방식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몸은 피와 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정신으로도 이루어졌기에 성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죠. 또 이들을 잘 가꾸고 유지하기 위해 적잖은 노동도 필요하지요. 뿐만 아니라 몸을 위해 음식을 섭취 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안락함을 위한 많은 노력도 수반되어야 하죠. 즉 우리가 평생 몸을 위해 행하는 노력들을 살펴보면 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어떤 귀한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몸은 지치고, 소모되고, 마모되어가는 몸들일 뿐일 때가 많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숭배도 몸을 소비하는 오랜 방식이다. 생각속의 몸은 이상적인 모습을 한 하나의 관념으로 자리 잡아 실제의 몸 각각이 지닌 독특함을 삭제한다. 정작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 부분을 마주하면 매우 낯설어 한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자유자재로 흐르는 생각을 애써 차단하려고도 한다. 아마 사회적 인식과 통념 때문일 것이다. 김용호의 몸 사진은 실제 살과 몸을 담고 있지만, 이를 빌어 인간 몸에 대한 고정관념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몸의 외형이 내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며 몸을 보아왔는지 반추하고,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만약 인류가 지구상의 지배자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몸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탐구되었을까? 만약 어떤 강한 존재가 인간을 지배해 인간의 몸이 거래되고 사용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동물들을 대하듯이 취급되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 의해 채집되어 포르말린으로 가득한 유리 항아리 속에 떠 있거나, 잘 말려져 멋진 미술관의 액자 속 표본으로 붙어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김용호는 인간의 몸을 다른 시각으로 상상하고, 그를 통해 여러 형태로 변화시킨다. 그에게 몸은 신대륙이다. 우리는 ‘엄마’라는 이름의 대륙 ‘MOM’에서 탄생한다. 그렇게 몸은 미지의 세계를 표상하기도 하고 굴곡진 지형이나 깊은 골짜기와 높은 언덕, 완만한 평야를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병이나 기타 위험에 맞서 싸우며 대륙을 지켜나간다. 작가는 몸에 대한 절대적인 미적 기준과 가치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머니라는 대륙에서 탄생해 사회에서 채집되고 표본화된 뒤, 상품이 되어 팔려 나가는 몸의 고유하고 귀중한 가치에 대해 고찰한다.
김용호의 새로운 제안으로 바라보는 몸은 2007년 대림미술관 전시 당시 큰 관심을 끌었다. 미술관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할 만큼 사회에 묵직한 명제를 던졌고, 이후 미국 웨슬리안대학의 초청 전시로도 이어졌다.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영감을 받은 영상 ‘MOM’은 큰 호응을 받았다.이탈리아 악어가죽 회사 콜롬보에서는 동물의 가죽대신 인간의 몸을 찍은 김용호 사진을 표면으로 사용해 수트케이스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당시 수트케이스의 가격이 1억 원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김용호의 몸 사진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지만,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다른 면을 마주하게 한다. 익숙하지만 동시에 생소한 몸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금 본질을 향하게 된다. 몸을 통해 우리는 끝없이 스스로를 발견한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에서부터 정신적, 영적인 가치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인간의 몸은 사회에 의해 통제되고 사육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저 태어날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자신의 몸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의 몸은 한없이 귀중한 존재임과 동시에 다른 생명체와 다를바 없이 그저 생명이 담긴 몸일 뿐이다. 인간의 몸을 통한, 몸에 대한 새롭고도 순수한 통찰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