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에 “에드워드 호퍼는 화가가 될 것이다”라고 써놓던 어린 호퍼는 20세기가 막 시작되던 때에 주로 뉴욕에서 활동했다. 이후 파리에도 한동안 머물며 그림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뜬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도시를 사랑한 그는 뉴욕의 곳곳을 탐험하며 변화하는 미국의 풍경을 그렸다. 그가 바라본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인 타인의 삶이었
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에서 재창조된 풍경은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그 자신이나 다름없다.
『에드워드 호퍼, 자신만의 세상을 그리다』에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이 없다. 대신 호퍼의 삶을 간결하게 그려낸 웬델 마이너Wendell Minor의 그림과 로버트 버레이Robert Burleigh의 글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타인과 그들이 속한 풍경을 관찰했던 것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호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상상과 관찰로 재해석한 한 화가의 삶은 독특한 힘으로 우리를 다시 한번 호퍼의 세계로 데려다준다. 호퍼, 마이너와 버레이 모두 특별한 눈을 통해 새로운 틈새를 발견해냈듯, 독자 역시 이번만큼은 관람객이 아닌 관찰자로서, 여행하듯 호퍼의 그림을 더듬어보길 권한다.
어두운 저녁의 뉴욕, 창 너머로 보이는 노란색 벽의 방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대화를 하거나 서로를 응시하고 있지 않다. 에드워드 호퍼가 1932년에 그린 〈뉴욕의 방(Room in New York)〉은 누구나 한 번쯤 봤음직한 유명한 작품이다. 남자는 테이블 앞 안락한 1인용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여자는 그 옆 피아노 앞에 앉아 지루한 듯 건반을 눌러보고 있다.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들과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옷으로 짐작해보건대, 이들은 제법 풍족한 삶을 누리는 계층에 속하는 것 같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이들의 현실은 이 그림처럼 온화하거나 평화롭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 할 이야기를 잃어 지루하기 짝이 없거나 너무도 안정된 삶에 권태기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하니 말이다. 아름다운 다홍빛의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신문만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을 조금이나마 끌기 위해 피아노 건반을 퉁퉁 튕기며 소음을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여자, 퇴근 후 집에서 침묵을 지키며 저녁을 보내고 싶은 남자. 조용하고도 정적인, 그리고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을 담은 이 그림처럼 에드워드 호퍼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끝없이 생산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새삼스럽게 펼쳐낸다.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사실주의적 작품들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자 했던 미술학도 시기와 5년간의 유럽 여행에서 보았던 이색적이고도 다양한 삶의 풍경, 그리고 직업 전선에서 펼친 광고미술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1920~1930년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을 지난 시대에 그려진 그림에는 격정적인 폭우 이후 사람들에게 남은 공허함과 소외감, 상실감, 그리고 고독감의 공기가 나른한 오후처럼 무겁게 드리워 있다. 그의 작품은 추상미술에서 사실주의, 팝아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그가 남긴 20세기 초중반의 그림들이 여전히 회자되는 까닭은 어쩌면 점점 황망해져가는 도시와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의 단상이 과거 어두운 미국 사회의 모습과 병치되기 때문은 아닐까.
1938년 작 〈193호 차량의 C칸(Compartment C, Car 193)〉에는 모자를 쓴 여성이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옆자리에는 그가 가져온 다른 책들이 놓여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차 창밖은 석양에 물든 숲과 다리를 지나고 있다. 여자가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 아니면 여행에서 돌아오는 중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쓸쓸한 마음이 짙게 물든 여정임은 확실하다. 보통 여행의 시작은 밝은 빛이 감도는 낮,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여행지에서 있을 많은 모험과 앞으로 쌓여갈 추억들에 미리부터 가슴 설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창밖은 무시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책에만 시선을 보낸다. 책이 아주 흥미진진해 보이지도 않는다. 가슴 아픈 이별을 고하고 기차에 올라탄 것일까, 아니면 삶이라는 여정의 무게에 지쳐 붉은 석양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외로움을 가리려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일까.
1929년 작품인 〈촙수이(Chop Suey)〉는 한 레스토랑의 풍경을 묘사한다. 모자를 쓴 세련된 두 여인이 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창밖에 보이는 빨간색 간판을 보니 이
레스토랑의 이름이 ‘촙수이’인 것 같다. 레스토랑 안에는 환하고 따사로운 햇볕이 사선으로 내리고 있다. 창문 옆에 걸린 노란색 코트가 햇살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난다. 정면을 향한 여자의 얼굴에서 경직된 표정이 포착된다. 분명 두 여인은 그리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등지고 앉은 여자가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고, 맞은편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의 시선은 방향을 잃었다. 어떤 기쁘지 않은 사연이 이들에게 찾아온 것일까. 두 여자 뒤로 마주앉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지만, 남자는 무언가를 감추는 듯 손에 든 담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어쩌면 여자에게 꺼내기 힘든 말을 시작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든가 등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 같다. 그렇지만 레스토랑 안에는 가을 햇살이 만드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레스토랑 이름이나 테이블 위에 놓인 찻주전자는 당시 아시아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한 뉴욕의 이질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대리석 상판을한 테이블이나 등나무 등받이의자, 창가에 놓은 작은 스탠드 역시 1930년대 뉴욕의 모습이다.
호퍼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는 1942년 작 〈밤을 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이다. 어두운 밤, 길에는 아무도 없다. 바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주변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커다란 유리 벽으로 된 바에는 4명의 사람이 있다. 바텐더로 보이는 하얀 셔츠를 입은 금발머리 남자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를 향해 앉은 두 남과 여, 특히 빨간 드레스를 입은 빨간 머리의 여성을 훔쳐보는 듯하다. 여자 옆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신사가 있다. 이들은 무언가 무거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나누고 있는 듯하다. 둘은 분명 사랑하는 사이다. 바에 올려진 남자와 여자의 손이 서로 맞닿아 있다. 여자는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며 무언가 불만을 품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정면을 응시한 남자의 자세는 어쩐지 확고해 보인다. 맞은편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만의 상념에 빠져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1940년대 뉴욕 남자들은 세련된 중절모와 모직 수트, 그리고 넥타이를 착용했다.
여행은 우리에게 남들이 보지 못한 멋진 무언가를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국적인 나라라고 해도 그곳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은 여느 도시인들처럼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공허해 보인다. 작가는 그 지치고 실망한 권태로운 일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호퍼의 그림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그 장소, 그 사람과 그 상황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삶이라는 여정 자체가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단조로운 풍경 하나에도 길게 풀어 낼 만한 사연은 가득 스며 있다. 삶의 수 많은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추측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 여행을 떠난다.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평범한 슬픔과 근심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호퍼는 따뜻한 공기로 캔버스를 채워놓은 채 여행의 출발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