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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1

이름 없는 반려

글.서예람

내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시간과 몸뚱이 하나뿐이라 믿고 살아온 빡빡한 사람.
갈수록 몸에 의해 시간이 많거나 적어질 수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와 다른 몸들과 그들의 삶, 주변이 궁금하다.

『너와 함께 반짝반짝』
소소한소통 지음
소소한소통

강아지나 고양이 입양처를 구하는 글들을 보면 꽤 까다롭게 아이들의 새 가족을 구한다. ‘버리지 않고 혹시나 동물이 아플 경우에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입양자들을 선별하는 것이 구조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듯하다. 반려에는 무언가를 자기 삶에 들인 이상 그것의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동물을 반려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귀엽지 않다거나 아파서 품이 많이 든다는 인간의 사정 때문에 무고한 그들을 버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진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규범이라는 틀은 실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한참 떠돌던 김창완 아저씨가 청취자에게 보낸 편지처럼, 즉석에서 그린 수많은 동그라미 중에 정말 모범적인 동그라미, 즉 동그라미라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몇 개 안 된다. 반려생활도 그러하다. 입양자를 구할 때 적용되는 규범과 동물과 계속 살아가는 반려인의 삶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모범적인 반려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게 아니라 끝까지, 즐겁게, 최선을 다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체에서는 쪽방에 사는 독거노인이 갈 곳 없는 고양이나 수많은 유기견을 거두고 동물농장처럼 대가족이 함께 사는 이야기가 종종 보도된다. 이는 모범적인 반려인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엄연한 반려 가정의 실제다.
모범에 대한 기준은 사회 전체의 도덕적 수준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가르는 가름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와 함께 반짝반짝』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 속에 자리했던 ‘반려인의 자격’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한꺼번에 균열을 내는 책이다. 장애인은 그저 돌봄이 필요한,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에게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나 사회가 힘을 합쳐 도와야 하는 일들도 있다. 책에 소개된 4명의 발달장애인은 다양한 가구 형태로 살아가는 반려생활자들이다. 김영걸 씨는 19마리의 거미와 가족과 함께 산다. 남수진씨는 시설에서 살며 달팽이와 금붕어들의 반려인이다. 어린이인 류현비 씨는 가족과 함께 고양이 산이, 아라와 강아지 몽지와 한집에 살고 있다. 임종운 씨는 고추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과 물고기를 반려한다.
당연하게도 반려생활은 ‘정상가족’에게만 허락된 사치가 아니다. 이때의 ‘정상가족’은 그 구성뿐만 아니라 모두가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로 그려지곤 한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적절한 모범을 세우고 좇는 일은 ‘우리’를 위해서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 경계선은 분명히 알아야겠다. 규범은 수많은 개별 삶이 아니라 공동체, 사회, 우리 모두를 향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때의 ‘모두’가 문자 그대로의 모두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어쩌면 쉽게 조건을 세우는 것보다 ‘모두’에 고려되지 않는 삶들을 바라보고 진정한 기준을 고민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데에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일반교양인 독자’가 아닌, 진짜 모두를 위한 책이다. 쉬운 말씨로 쓰여있는 데다가 길지 않고 사진이 많기 때문에 반려생활을 계획하는 발달장애인, 혹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미 반려생활 중인 장애 혹은 비장애 반려인들이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고양이 둘, 강아지 하나와 함께 사는, 모범과는 거리가 먼 반려인인 내가 뜨끈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되는 반려동물들에게는 이름이 있거나 없다. 이름을 지어주었던 동물이 일찍 죽은 경험이 있어서,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서 이름이 없단다. 이 반려인들은 자신의 반려를 마치 엑스트라처럼 금순이 1, 2, 3과 같은 식으로 부르거나, 심지어 사 온 가격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이름 없는 반려동식물을 자세히 바라보고 좋은 것을 해주려 한다. 가끔은 나도 우리 애들의 이름을 잊고 그저 바라보고 신나게 놀아주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반려인으로서의 책임과 우리의 이름을 잠시 잊고, 감성적이고 느끼한 수사 없이 우리가 함께하는 생을 만끽하는 한때에 눈에 들어올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생소하고, 고맙고, 가슴 벅찰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