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21
가장 무거운 책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고, 글에 따라 그들은 작가 말고도 다른 이름을 얻는다. 소설가, 시인, 평론가… 에세이스트라고도 하는, 산문가도 있다.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할 만한 작가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김신회 작가다. 그는 정말 꾸준히 오랫동안, 치열하게, 많은 에세이를 써 왔다. 그러다가 소위 대박이라고 할 만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본 경험도 있다. 누구라도 “보노보노 에세이 쓴 작가!”라고 하면 “아, 그!” 하고 알 것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의 글을 따라가면서 읽고 있다. 그의 글에선 자기 삶을 꾸준히 기록해온 한 개인의 성장 서사가 읽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세이라는 장르가 대개 그렇듯, 그도 자신의 경험에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탁월하다.
신작 『가벼운 책임』에서 김신회는 개인이 가져야 할 책임의 무게에 대해 말한다. 책임은 ‘가벼움’이라는 수식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우리는 책임을 진다거나 약속하는 행위가 대단히 무거운 것이라고 배워왔다. 게다가 책임이란 사회적인 무게를 지고 다가오기 마련이다. 사회나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것 같은 과제나 책무 같은 것이 ‘책임’이라는 말에 들어있다. 어쩌면 사회 일원으로서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씩 책임에 짓눌려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도 그런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몇 년 전의 자신을 만나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책임감을 생각하면 숨도 못 쉬겠지? 달아나고 싶어 미칠 것 같지? 다 됐고, 일단 좀 느긋해져봐. 실수해도 그러려니 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도 좀 기다려보고, 남에게 상처 주거나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게 곧 너라는 사람 전체를 규정짓진 않는다는 걸 믿어봐.”
과거의 자신에게 따뜻한 조언을 남긴 그는 이제 ‘나를 책임지며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막연하고 복잡하게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는 구체적으로 그러한 삶을 추구한다. 자신이 선택한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사는 삶. 그렇지만 말이 쉽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삶만큼 무거운 것은 없다. 가벼운 책으로 세상에 선언하듯 나왔고, 그래서 디자인도 가볍게 하려고 애쓴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무겁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 전체는 아니지만 그 일부인 작가라는 정체성, 그 안에서 지켜야 할 삶의 책임은 그래도 명확하다. 크게 두 가지일 텐데, 하나는 자신의 글과 삶을 일치시키는 책임이다. 글은 참 좋았는데 만나보니 실망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에서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원고 마감을 지키는 원고 납품인로서의 책임이다. 많은 작가들이 호기롭게 원고 계약을 하지만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은 꽤 드물다. 작가들은 이것을 ‘글빚’이라고 하며 적당히 포장하는 가운데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지낸다. 나도 글빚이 밀려 있는 입장에서 얼마나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저 부끄러워질 뿐이다. 어쩌면 두 번째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작가 김신회는 작가로서의 두 가지 무거운 책임만큼은 누구보다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그는 내게 “민섭아, 작가들이 원고 마감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이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약속이잖아. 그런 작가들하고 가까이 지내면 안 돼”라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차마 “저어, 그럼 저랑도 가까이 지내시면 안 되는데…”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네, 그럼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책임』을 읽으면서 다시금 내 삶에 내려앉은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내 생각엔 책 제목이 ‘무거운 책임’이어야 더 현실과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부끄럽지만, 이 원고 마감도 단행본 마감으로 인해 하루 늦었음을 슬쩍 고백한다. 비밀이니 어디 소문내지 말아주시길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