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야, 사비야, 산책가자!’
소의 밥을 챙기고 난 오후 시로와 사비, 마츠무라 씨가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하는 마츠무라 씨네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이것저것 참견하느라 뒤처지는 시로와 사비도 마츠무라 씨가 부르면 냉큼 달려온다.”
싱그런 숲길을 따라 한 남자와 고양이 두 마리가 걷고 있다. 늘 붙어 있어도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은 여느 자매들처럼 두 고양이 시로와 사비는 이것저것 참견할 일이 많아 보인다. 고양이 자매와 걷는 이는 훤칠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 연보라색 상의에 감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작업 바지를 입은 나오토 마츠무라 씨다. 그는 영락없는 아빠 미소를 짓고 있다. 흡사 딸들이 나누는 대화 주제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네 아버지 같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지는 이 가족, 나는 언제라도 격하게 환영하고 싶어진다.
“원전 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인가. 금단의 땅, 죽음의 땅, 유령마을… 미디어에서 일본 원전 사고 지역을 표현한 말이다. 도저히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져 버린 곳.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그곳에는 사람이, 사람과 함께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었다.”
_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중
오오타 야스스케는 분쟁지역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사진가로 활동해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반경 20km 지역에 출입이 금지되고 피난령이 내려지자 그는 경계 구역에 들어가 동물들을 구호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이를 촬영했고, 그 기록을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 『후쿠시마의 고양이』와 같은 책들에 담았다. 『후쿠시마의 고양이』에서는 두 마리 고양이와 살아가는 마츠무라 씨의 평온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사랑스러운 세 가족이 만들어가는 순간들은 미소가 절로 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나 이들이 거니는 한적한 숲길이 후쿠시마현 도미오카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 가족에게서 느껴지는 행복과 후쿠시마에 닥친 불행사이의간극이 크나큰 괴리감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고 주문을 외듯 바라게 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이 어마어마한 비극 앞에서 ‘어쩔 수 없잖아’ ‘불쌍하지만 어쩌겠어’라며 쉽게 고개를 돌려 버리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우리의 탓도 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버려진 한 생명이라도 구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덧없이 죽어 가는 동물들을 좀 더 많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야스스케는 피폭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보음이 끊임없이 울려대는 후쿠시마로 들어간다. 그는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원전사고로 인해 얼마나 많은 동물이 끔찍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으며,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도우며 기록을 남겼다.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난 뒤 주변 지역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즉시 피난하라는 명령으로 인해 후쿠시마 주민들은 급박하게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원전 사고의 후폭풍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고, 동물을 임시 대피소에 데려갈 수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반려 동물과 가축들을 내버려둔 채 피난을 떠났다. 야생동물이나 길에 사는 개와 고양이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 기록된 것처럼 야스스케는 인간이 자초한 재앙과 그로 인한 참담한 결과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리고 그는 “공동체의 붕괴, 가족의 붕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이런 비극에 대해 누구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죽음 중에 가장 고통스럽다는 굶어 죽는 아사.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함께 지내던 동료 소들의 시체 사이에 자신도 오물에 뒤범벅이 되어 굶어서 죽어가는 곳. 이곳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일까.”
_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중
방사능에 피폭되면서 “인간을 위한 식재료”로서의 쓰임새와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가축들은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되었다. 가축들이 그저 방사능에 노출된 짐으로 전락하자 정부는 살처분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고, 많은 동물들이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선택일까,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드는 한편 버려진 채로 고통받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체념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수년간 후쿠시마를 오간 야스스케는 영문도 모른 채 괴로워하다 죽어가는 동물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분노와 절망 끝에 그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인
식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는데 동물을 걱정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냐며 합리화하던
사람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정당화했던 나에게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도미오카 마을이 고향인 마츠무라 씨는 동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정부와 전력회사에 굳은 의지로 맞서 왔다. 그는 산지옥에서 생명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신
념으로 살고 있는 존엄한 위인이다. 많은 생명이 그의 고군분투 덕분에 비극의 땅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다. 『후쿠시마의 고양이』 속 사진들을 보다가 꽃이 만발하고 풀이 무성한 도롯가
에 홀로 서서 물끄러미 카메라를 응시하는 검은 소와 눈이 마주쳤다. 저 생명체를 식재료로만 간주하는 게 정당한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물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고개를 떨군 채 걷는
소들의 뒷모습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에서 아사 직전의 고통으로 절규하던 검은 소의 커다란 눈망울과 오버랩 된다.
동물 보호소 앞에 버려졌던 고양이 네 마리는 다른 동물들처럼 살처분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 중 두 마리가 먼저 홋카이도로 입양을 갔고, 남은 두 마리를 마츠무라 씨가 집으로 데려와 가족을 이뤘다. 시로와 사비의 이야기만 나오면 마츠무라 씨는 들뜨고 행복한 얼굴로 시로는 이렇고, 사비는 저렇다는 둥 수다를 그칠 줄 모른다. 여러 장의 사진에서 마츠무라 씨는 흙바닥에 주저앉거나 거의 반쯤 드러누워 시로와 사비가 뒹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행복에 겨운 표정이란 바로 그 얼굴을 두고 만들어진 말인가 싶을 정도다. 바라보기만 해도 나에게까지 행복이 스며드는 것 같아 보고 또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해가 바뀌고 시로와 사비는 어느 덧 둘이 합쳐 열 마리나 되는 아기 고양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 고양이들이 되었다.
원전 사고의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형인데, 책 속 벚꽃이 만발한 봄날의 풍경은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기만 한다. 사고 이후 아직까지 큰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을뿐더러, 최근 일본 정부는 원전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죽음의 땅에서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마츠무라 씨와 고양이 자매에게는 대체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들은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을까.
일본에서 이 책은 원전 사고 후 4년이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다. 당시 마츠무라 씨가 살고 있는 도미오카 마을은 물론, 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 이내 지역의 약 90%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판단되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이라는 것도, 정부나 전력회사와 맞서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것도 수년째 달라지지 않았다. 마츠무라 씨와 두 고양이에게 있어 달라진 것은 단 하나, 그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 덕분에 이 특별하고 소중한 가족은 대가족으로 거듭나는 축복을 받았다. 슬픔과 분노 외에 그 어떤 의미도 남지 않은 것만 같던 죽음의 땅에도 새 생명이 태어났고, 그것은 절망 속에서 투쟁심만 남아있던 마츠무라 씨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재건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후쿠시마를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하기란 아주 어렵고 먼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의 존중과 가족 간의 사랑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생명의 존귀함을 잊지 않고 지켜낸 이들의 사랑스러운 일상은, 많은 것에 무뎌져버린 지금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