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본인은 빨강 머리 앤을 80년대 TV만화 시리즈로 처음 만났다. 이후 앤의 사랑스러운 여정을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찾아 읽었지만 영상이 전해주던 섬세하고도 화창한 아름
다움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나머지 책 속에 띄엄띄엄 수록된 삽화들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만화영화로 각인된 아름다움은 최근 넷플릭스에서 전편을 서비스하고 있는〈빨강머리 앤(Anne with an E)〉 시리즈에서도 거의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꿈 많던 빨강 머리 말라깽이 소녀가 전해주던 웃음과 희망, 위로와 용기, 그리고 그 아름답고 찬란한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어준 그린 게이블의 꽃과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몽글몽글한 감성이 피어나는 듯하다.
“혹시 마중을 나와 주시지 않는게 아닐까 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나오시지 않는 이유를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일 오늘 밤 아저씰 만나지 못하면, 보세요, 저 큰 벚나무 위에서 밤을 새울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전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며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는 벚나무에서 잠을 잔다는 건 아주 멋지잖아요? 마치 대리석의 널찍한 방
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곱다구요? 곱다는 말은 딱 들어맞지가 않아요. 아름답다. 그것도 틀렸고. 그 어느 쪽도 표현이 부족해요. 아 정말 멋있었어요. 여기가 (가슴을 만지며) 찡하니 아파오잖아요. 아저씬 안그러셨어요? 전 줄곧 그래요. 진심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렇게 돼요.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사과나무 길이라니… 아! 그래요.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하면 어때요? 아주 환
상적인 좋은 이름이죠? 앞으로는 아저씨도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불러주세요.”
빨강 머리 앤이 만나고 대화하던 어여쁜 꽃과 나무들, 외톨이 소녀의 상상 속에서 기쁨을 전해주던 정다운 친구들을 그림으로 만나보며 만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꿈꾸던 그 시절과 재회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