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월세방에 살면서 매일같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차만큼은 비싼 외제 차를 몰아야 하는 사람들, 박봉에 시달리며 백 원 단위까지 알뜰하게 계산하고 살지만 명품 가방 하나쯤은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 앞서 설명한 이들과는 다르지만 가끔씩 스스로 분에 넘친다 싶을 정도의 사치를 누릴 줄 아는 사람들까지. 이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줄곧 비웃어왔다. 그 굴절된 시선은 가난하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는 일종의 차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빈곤과 약탈, 부조리와 비극을 일상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멋진 스타일을 가꾸는 데 공을 들인다면? 척박한 삶 한가운데서도 에너지와 멋스러움, 독특한 개성을 내뿜는다면? 이들도 제 분수에 맞지 않게 처신한다고 비판받아야 하는걸까? 함부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의 치장은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튼튼한 갑옷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영국의 사진작가 타리크 자이디는 콩고 민주 공화국(DR Congo)의 수도 킨샤사Kinshasa와 콩고 공화국(Rep.Congo) 브라자빌Brazzaville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사퍼들(Société des Ambianceurs et des Personnes Élégantes; La Sape이라는 하위문화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컬어 Sapeur/Sapeuse라 한다)을 포착했다. 사퍼는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콩고에서 매우 흔히 사용되는 단어다. 이들 대부분은 택시운전사, 재단사, 혹은 정원사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업무 시간이 파하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댄디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변신한다. 삶의 낙을 스타일 변신에서 찾는 이들은, 록스타처럼 사람들 눈에 띄기를 원한다. 폐허에 가까운 가난한 거리에서 불쑥 탄생한 이들의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과연 돈과 안목은 별개의 문제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사퍼들은 영락없는 패션 피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스타일리시한 이들의 패션은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는데, 영국의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도 사퍼들의 스타일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적이 있으며 패션잡지 『보그』에 수차례 그들의 감각적인 스타일이 소개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퍼들을 촬영한 타리크 자이디에 따르면 킨샤사와 브라자빌은 강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만큼 두 지역 사퍼들의 스타일 또한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브라자빌의 사퍼들은 프랑스 스타일의 절묘하고 감각적인 수트를 착용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킨샤사의 사퍼들은 일본의 요지 야마모토 코트부터 스코틀랜드의 킬트에 이르기까지, 보다 이국적인 자유분방함을 선호한다는 것.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진정한 사퍼 정신이란 무엇일까? 그들의 스타일은 분명 패션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패션을 즐기는 태도는 사퍼들의 낙천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들이 처한 가난과 불안, 폭력과 차별을 고스란히 가사로 담은 대중음악 또한 비극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가벼운 멜로디에 불쾌한 단어들이 박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아픔을 자기 연민으로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에게 해학은 삶의 철학이자 예술로 추앙받는, 일종의 율법과도 같은 가치인 것이다.
남성들의 수트 패션에서 시작된 사퍼 문화는 최근 콩고 여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같은 콩고인들의 유쾌한 도전은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콩고 사회를 뒤흔들면서 “삶에 지치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사퍼들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퍼는 끝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움직임 그 자체이다. 콩고의 청소년들 또한 패션을 적극적으로 향유함으로써 그들만의 문화가 아닌 세계로 뻗어 나가는 디딤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극적인 삶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웃음인지도 모른다. 그 웃음이 다채로운 색과 독창적인 코디로 완성된 패션의 즐거움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사퍼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