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자갈치시장도 있고 해운대 앞바다도 있고 그 앞에 즐비한 고급 호텔들도 있고, 센텀시티에 모여있는 백화점들도 있고, 벡스코도 있다. 노래가 여기서 끝난다면 부산은 그저 융성한 바닷가 상업 도시로만 보일 것이다. 상업 시설이 즐비한 데에 비해 공공 공간이나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부산을 포함한 많은 도시에서,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로부터 제기되었다. 부산시는 이 같은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으로 시 직영 도서관을 내놓았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2020년 11월, 마침내 시민들을 향해 활짝 문을 연 부산도서관을 소개한다.
부산도서관이 위치한 사상구 덕포동은 ‘언덕 위의 포구’라는 뜻으로, 이곳이 전에 언덕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산이 많다는 이름을 가진 부산이지만, 부산의 언덕들은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산 시민에게 언덕이란 숨쉬듯 당연한 생활환경이다. 부산지하철 2호선 덕포역 근처로 부산도서관의 입지가 정해진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부산 시내의 여러 후보지들
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와 시민토론회 등의 과정을 거친 결과, 번화한 동쪽 지역에 비해 도서관 수가 월등히 적었던 지금의 자리가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소규모 구립도서관과 달리 부산
시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도서관이니만큼, 이곳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 그 이상으로 자리 잡아야 했다. 단순한 도서관 기능을 넘어 지역사회의 플랫폼이자 지역 간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중대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부산도서관 건축물의 주제어가 있다면 ‘열림’이다. 일단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에는 엄격히 구분된 경계나 문이 안 보인다. 대한민국 공공 건축물에서 보기 드문 개방적인 디자인이
다. 대부분의 공공 공간은 내부가 여러 개의 문으로 구획되어 있어 각 공간에 할당된 목적에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이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이라는 사물은 별것 아닌 듯 보이
지만, 어떨 때는 묵직한 경계로 작동해 그 안과 밖을 효과적으로 분리시킨다. 부산도서관 내부는 전체 공간이 계단이나 문이 없는 입구로 통한다. 마치 탁 트인 대형 쇼핑몰 안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공간 전체가 막힘없이 이어져 있는 데다가 다양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 기존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공간들
을 구별하는 문이 거의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용자는 도서관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서 돌아다니고 즐기게 된다.
내부 동선과 마찬가지로 건물 외부에도 경계가 없다. 벽이나 펜스 같은 물리적 경계가 없어 시민들은 사방에서 도서관 건물로 접근할 수 있다. 부지 안에 있는 작은 놀이터 역시 남녀노
소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는 부산도서관의 성격을 보여주듯 경계나 턱이 없다. 이와 달리 물건을 파는 상업 공간은 내부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그 외부와는 단절된다. 상업 공간은 이용
자를 건물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그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되 쉽사리 나오지 않게끔 설계된다. 손님을 일단 안으로 들이려면 그들에게 일종의 ‘특별해지는 경험’ 같은 것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갖가지 접대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에게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 곳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제공한다.
부산도서관에는 그 흔한 열람실이 없다. 독서실 책상은 따로 없지만, 10만 권 넘는 도서들이 펼쳐져 있는 2~3층 곳곳에는 책을 골라 읽거나 개인 공부를 할 만한 자리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책을 고르는 데에도, 책 읽을 자리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릴 정도로 부산도서관의 널찍한 내부는 이리저리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단을 통해 위아래층을 오간다든지, 구석에 있는 깊은 의자를 찾아 마치 집의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를 내볼 수도 있다. 서서 책 읽는 책상, 등이 높은 안락의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낮은 책상, 북 카페 분위기
를 내는 긴 열람용 탁자를 오가며 그날 그날 다른 자리에서 책 읽는 재미도 놓치기 아쉽다. 좋은 자리를 일찍 가서 선점해야만 하는 기존 공공 도서관에서의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여유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네 가지로 구성된 책 큐레이션 섹션에서는 문학상을 거머쥔 책, 꾸준히 읽히는 유명한 책 등 평소 궁금했던 책들을 들춰볼 수도 있다.
건축적인 면만이 아니라 장서에 있어서도 부산도서관은 수준 높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품격을 보여준다. 특히 어린이실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팝업북이나 어린이 예술 서적, 커다란 책, 소리 나는 책, 영어 원서 등이 구비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 양말 바람으로 여기저기 탐험할 수 있는 어린이실은 그림책나라, 이야기나라, 창작나라, 서가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어린이와 학부모들에게 다채로운 독서환경을 제공한다. 다문화 도서나 어린이 신문, 어린이 잡지 등 다양한 어린이 자료도 비치되어 있어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다.
부산도서관은 쥐 죽은 듯 정숙해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와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기도 하는, 말과 글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조용한 도서관은 공부하기에 적합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사람과 책의 진정한 연결은 방해할 수 있다. 이에 부산도서관은 무엇보다 책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 안에 들어서서 우리는 책도 보고, 창밖도 보고, 4층에 올라가 하늘도 본다.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은 물론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가만히 공부만 하러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곳 부산도서관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자료실이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