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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0
너무 소소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나를 구원한 것
글. 이주란
소설가. 아직까진 잘 웃고 잘 운다.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Marc Lecarpentier와 삽화가 장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가 음악에 대해 나눈 인터뷰를 엮은 『상페의 음악』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마르크 르카르팡티에(L): 늘 뮤지션이 되기를 꿈꿨다고요?
장자크 상페(S): 물론이죠! 당연히 그렇죠!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에 직접 참여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나는 상페의 세계관과 그림 속 인물들을 아주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가 더욱 즐거웠다. 게다가 이건 비밀인데 나는 사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쫄바지를 입은 채 장독대 위에 올라가서 신나게 주현미의 ‘짝사랑’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버렸다. 일 년에 한두 번 친구들의 생일파티 덕에 노래방에 가곤 했는데, 그럴 땐 모기만한 목소리로 겨우 한 곡 부르다가 스스로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어떠한 계기로 중학교 3학년 때쯤 공부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 손으로 노래방과 다시 손을 잡았다… 너무 급격한 전개인가? 피아노 학원 한번 다녀보지 못했고, 음악이 뭔지도 잘 몰랐지만 노래 부르는 게 정말 좋았다. 그 후 나는 이십 대 중후반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노래방에서 보냈다. 친구들이 하나둘 목이 쉬어갈 때 나는 목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지금은 다시 내성적인 인간이 되어 술에 아주 많이 취하지 않은 이상 노래방은 안(못) 가는데, 그래도 문제없다. 한때 내 삶을 노래방이 구원해 주었다면 이제는 유쾌한 친구들이 나를 구원해 주고 있으니까.
L: 당신은 유쾌한 존재입니까?
S: 내가 보기엔 유쾌한 쪽입니다. 어렸을 땐 늘 유쾌했어요.
L: 여러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입니까?
S: 다른 사람들 덕분에!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따금씩 비극적인 짓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유쾌한 사람
들입니다.
꽤 오랜 시간, 책도 거의 안 읽고 영화도 거의 안 보고 음악도 거의 안 듣고 지냈다. 무엇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자주 울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자주 웃으면서. 일요일 오후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플레이리스트를 고를 때는 근래 보기 드물게 몹시 행복했다.
여러 이유로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은 포기했다. 대신 새로운 꿈이 있다. 그건 바로 파주 쪽에 단독주택을 얻어 노래방 기기를 설치하는 것. 그래서 언제든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사는 것. 『상페의 음악』에 대한 이야길 하는 내내 노래방 운운하는 게 괜찮을까 이제 와 걱정이 되어 상페가 인터뷰 말미에 한말로 마무리를 해본다.
S: 그건 그렇다 치고, 죄송합니다만, 난 나의 세 친구, 엘링턴과 드뷔시, 라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나의 진정한 열정은, 너무 소소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재즈곡들과 몇몇 클래식들입니다. 내 대답이 당신을 놀라게 하거나 짜증나게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나의 선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