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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고 불경스럽고,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에디터: 유대란, 사진: © cabaret Voltaire
취리히 구 도심의 스피글가세(Spiegel-gasse)가를 따라 걷다 보면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급 시계 상점, 자가증식할 것만 같은 H&M, 스타벅스 같은 대형 가게들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작고 신기한 가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금관악기 수리점, 펠트 모자 상점, 중고 아이스 스케이트 가게가 골목의 양 옆으로 띄엄띄엄 위치하고 있다.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내부는 어둑하고 외부의 인적은 드물다. 회색 코블스톤이 깔린 골목은 굽이지고 넓이마저 들쭉날쭉해서 다음 순간 마주칠 풍경을 예상하기 어렵다. 가파른 구간을 지나면 가로로 인접하는 다른 길이 보이고 이윽고 스피글가세의 끝이자 시작인 1번지, 카바레 볼테르다. 현대 예술사를 통틀어 가장 급진적이고 맹랑했던 예술운동의 산지, 다다이즘의 발생지이자 망명 예술가들의 무대였던 곳이다.
1916년 2월 2일자의 한 스위스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카바레 볼테르. 젊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모여 예술적 엔터테인먼트의 장을 연다. 카바레는 예술가들과 함께 고정 게스트들이 운영하며 매일 뮤지컬이나 문학적 퍼포먼스를 상연한다. 이곳으로 취리히의 젊은 예술가들을 초대한다. 어떤 성향을 지녔든, 어떤 제안을 하든 환영이다.”
그리고 며칠 뒤 카바레 볼테르는 휴고 발(Hugo Ball)의 주도로 스피글가세 1번지에서 영업을 개시했다. 휴고 발은 징집을 피해 독일에서 스위스로 망명한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망명 전 그는 독일에서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연극을 감독하고 칸딘스키가 추구한 ‘총체예술’을 지지하며 아방가르드 작품의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직접 전쟁을 보기 위해 1914년 벨기에로 여행을 떠났으나 그곳에서 목격한 상황에 혐오를 느끼고 돌아와 무정부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반전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그는 동료들과 표현주의 예술모임을 조직했는데 이탈리아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한 상황에서 모임은 위험한 동향으로 여겨졌다. 발 부부는 여권을 위조해서 스위스로 넘어왔다. 그는 취리히 뒷골목의 카바레 주인에게 ‘볼테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면 더 많은 맥주를 팔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서 카바레의 일부 공간의 운영권을 얻어냈다. ‘카바레 볼테르’라는 이름은 단평과 풍자의 대가였던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본명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에서 따 왔다. 휴고 발에게 볼테르는 사상적 대부 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