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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0
자연을 먹거리로
Editor.전지윤
“잡초는 자연스러운 삶의 열쇠다.”
거대 산업의 하나가 되어버린 농업을 비판할 때엔 늘 석유나 검은 비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농촌에 사는 가족이 없으니 내가 경험하는 농촌이란 강원도로 휴가를 갈 때 지나치는 풍경이 전부다. 그렇게 지나갈 때에 보이는 논밭의 벼는 너무 예쁘고, 다른 작물들 또한 귀해 보이니 검은 비닐이 쌓여 있다고 한들 원래 농사란 그렇게 짓는가 보다, 할 뿐이다. 그런데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의 저자 변현단은 “석유가 밥상을 점령”했다며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자연에게 해를 덜 준다는 친환경농사를 한다고 해도 결국 농사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흙에서 양분을 수탈하고 선별한 작물을 키우며, 토양을 획일화 시키고, 다양한 벌레들을 소멸시키는 또 다른 ‘수탈 과정’이 아니던가?”
평소 같았으면 타협을 포기하고 더는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지 못해 책을 덮었을 텐데, 자연농법과 자연재배의 철학을 지닌 이들의 절박함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 오히려 응원하고 동참하고픈 마음이 든다.
“진정한 유기농이란 종자부터 농부가 직접 채종하여 사용하는 것이며, 농사를 지을 때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동력과 농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이른다. 농부, 식물, 그리고 땅이라는 삼각구도에서 서로 유기적인 순환을 이루는 농사, 즉 농부가 배출하는 각종 유기물—음식물 쓰레기와 분뇨—이 식물의 거름이 되고 그것을 먹고 자란 식물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환농사를 일컫는 것이다. (…) 인간의 생명을 생각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농사가 되려면 소량생산, 소량소비, 소량폐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연의 모든 것이 땅에서 태어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저자 역시 자연농법과 자연재배를 실천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본위가 되어 작물과 잡초를 구분하는 것을 무용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연에서 얻은 건강한 먹거리를 건강하게 조리하는 것이야말로 내 몸에 약이 되어 비로소 건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식재를 가지고 단순하게 조리한 단순밥상”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우리에게 소비적 식생활 습관을 바꾸도록 권한다. 생산, 판매와 수익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무런 쓸모없는 잡초이지만 자연의 관점으로 보면 제철 식재인 잡초를 그림과 함께 일일이 소개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원추리, 냉이, 민들레, 비름나물, 돌나물, 명아주, 고들빼기처럼 원래 먹는 것인 줄 알았던 잡초들도 있지만, 토끼풀과 강아지풀도 먹는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잡초로 김치도 담그고, 천연 염색도 할 수 있고, 화장품도 만든다. 아닌 게 아니라, 근래에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비누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는데, 그 비누에도 어성초가 들어간다. 약초인 줄 알았는데 잡초였다니. 그 기준이란 게 얄팍한 인간이 만든 것이 과연 맞다. 샴푸를 쓰지 않으니 플라스틱으로 된 용기가 더 이상 쓰레기로 나오지 않고, 합성화학물질 사용도 줄일 수 있어 흡족했던 마음이 한층 더 커진다.
안경자 작가의 그림은 잡초 이야기에 매력을 더한다. 사진보다 더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에서 풀과 꽃의 생김을 자세히 알 수 있고, 꼭 직접 뜯어다 책 사이에 끼워 말려 놓았던 꽃을 보는 느낌이라 마치 향기를 맡는 것만 같은 황홀한 마음도 든다.
“농사는 인간의 땀으로 자연의 일부를 일구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자연이 흔하다 하여 천하게 여기지 말고, 소유하려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