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20

토끼에 관한 따뜻한 기억

Editor.이주란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이현 옮김
문학의숲

“지금까지 현대 과학자들이 연구한 모든 생명체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자기 삶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선택할 능력을 타고났다고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에 나 자신이 인간인 것이 싫었던 적이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을 의심하기 시작한 뒤로도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바랐는데,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마음과 생각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마음과 생각이 자꾸만 변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마치 어떤 잘못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생각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이 자꾸만 변한다는 사실에 일종의 죄책감을 갖게 되어 실제로 늘 괴로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자주 쓰던 방법은 생각을 멈추는 것, 그뿐이었다. 나는 늘 참지 못하고 생각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별소용이 없는데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티베트 린포체의 세상을 보는 지혜』를 읽고 마치 구름이 변하듯 나의 마음과 생각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에는 많은 수행법이 나오는데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3분이든 1분이든 잠깐씩 자주 해보면 되고, 심지어 잘 되지 않거나 어려우면 무리하지 말고 안 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강처럼 흘러가는 그 복잡한 생각과 마음들을 그저 흘러가게 두면서 그대로 바라보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괴로움은 보통 집착과 무지와 혐오에서 온다고 하는데, 나의 괴로움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생각한 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깨닫는 순간 신기하게도 괴로움이 절반쯤 사라져 버린다. 심지어 괴로움을 선택해도 된다고 말해주니 어쩐지 마음이 더 편안하다.
마음에 관한 명상법을 다루는 많은 책들 중 내가 이 책을 유독 좋아하는 건 실용적인 이유에서다. 불교와 현대 과학 간 상호 연구에 대한 대화들을 읽고 나면 생각의 흐름과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러니까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가 된다. 나의 괴로움은 뉴런 활동의 습관이고 그 습관은 고치려면 고칠 수 있으니까.
나는 문득 괴로움과 고민도 없는 어떤 날,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그럴 때면 내게 무한한 사랑과 따뜻함을 주었던 존재들이 떠오르곤 한다. 코로나19 이후 나는 원래도 얼마되지 않던 집 보증금을 빼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고맙게도 내안부를 걱정하는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다달이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상황인데 바로 타격을 입은 직종에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지 못하는데다가 글도 써지지 않아 많이 괴로워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어차피 나를 제한하고 있는 환경이라면,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나는 전보다 더 많이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곤 한다. 대상 없는 상태에서 마음을 잠시 쉬게 한 다음 자연스럽게 떠오른 어떤 대상을 두고 선량함을 생각하며 따뜻함, 친절함, 애정의 진실한 느낌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그것은 할머니나 어머니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친구일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어릴 때 키웠던 토끼를 떠올리곤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