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소중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아
에디터:전지윤
남편은 아이와 함께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여느 날처럼 부자가 바짝 붙어 시간을 보내다 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아빠는 이렇게 하면 기억이 날까 기대에 찬 표정으로 열심히 설명해보지만, 아이는 ‘나는 생각이 안 나는걸’ 하는 표정이다. 남편은 온갖 감정으로 복잡하고 섭섭해했다.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괜찮아, 그때엔 지금보다 더 어린 아이였으니까.
내가 기억하니까 또 이야기해 줄게.”
『추억을 담은 지도』를 서점에서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내용이 어떤지 모르는 채 눈을 감고 제발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이길 바랐다. 종이 위에 수채화로 기차역, 학교, 도서관, 공원, 영화관 등 이런저런 건물들이 그려져 있고 방위표가 있으니 분명 지도인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종이도 그림도 빛이 바랬다. 표지를 넘기면 앞주머니에 지도를 꽂은 가방을 들고 불안한 표정으로 소녀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지도를 펼쳐 추억 속으로 들어간 첫 장면은 아무도 없는 어느 적막한 거리다.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닮은 세피아 색감인데 자연스레 읽는 이들을 과거로 이끌며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한다.
프란 누뇨Fran Nuño의 『추억을 담은 지도』는 언제 어디가 배경인지는 불명이지만 전쟁 때문에 살던 곳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열 살밖에 안 된 한 ‘조이’라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전쟁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전쟁이 할퀸 상처로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난민이란 이름표를 단 아이들 중 하나가 될 조이는 떠나기 전, 동네 지도를 그려 자신이 살던 곳을 기념하고 추억하기로 한다. 지도는 우리가 사는 곳을 작게 줄여서 알기 쉽게 나타낸 그림이다. 그래서 조이는 자신에게 특별한 장소들을 지도에 옮기고자 했다. 그리고 조이를 대신해 작가는 소녀가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공간과 그곳을 공유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친근한 이웃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소하지만 행복한 기억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주잔나 첼레이Zuzanna Cellej의 일러스트레이션도 마찬가지이다. 일렁이는 감정은 물론 탄성이 나올 만큼 행복한 이야기로 전개되어도 첼레이가 그린 삽화의 색감은 선명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러나 창문으로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은 따뜻하고 목마는 곧 흔들거릴 것만 같다. 교실에 저마다 다른 표정과 자세로 앉아있는 친구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도 점점 크게 들린다. 영화관을 보면 심지어 고소한 팝콘 냄새에 마음이 설렌다. 우리는 조이가 자기에게 소중한 공간들을 지도에 그리면서 그곳에서 보낸 특별한 시간들을 기억하는 동안 함께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지도 그리는 것을 마쳤을 때 조이는 여러 곳에 흩어진 지점들을 빨간 연필로 이어보는데, 어렴풋이 ‘Zoe(조이)’라는 글자로 나타난다. ‘Zoe(조이)’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삶’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삶’이란 이름의 소녀에게 지도는 다시 네 삶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약속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