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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짧고 책은 길다, 삿포로 책방 여행
에디터: 이희조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 Sebastian Schutyse
눈의 도시로 불리는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는 10월 말에 첫눈이 와 4월까지도 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즉, 남들이 모두 벚꽃을 보러 바깥나들이를 하고 있을 때도 이곳에선 느지막이 일어나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며 ‘밖에 눈이 오니까’라고 이유를 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삿포로에는 각자의 개성으로 중무장한 매력적인 독립책방이 많다. 책에 파묻히기 좋은 도시, 삿포로로 떠나보자.
세계 50여 개국을 여행한 대단한 여행 애호가인 주인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여행과 세계와 관련된 책을 중심으로 아트, 패션, 서브컬처, 그림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5천 권 이상의 책을 갖추고 있다. 기분만이라도 여행하는 듯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주인장의 말대로, 이곳은 여행책을 펼쳐놓고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혼자서 세계의 숨겨진 비경을 여행하는 망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카운터 한 편에 놓인 노트에는 손님들이 각자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행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날적이가 있어 훔쳐보는 재미도 있다. 서가에 있는 책은 판매용은 아니지만, 1회 세 권까지 대여 가능하며 2주 이내로 반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파스타, 리소토 등의 식사와 전속 파티셰가 만드는 디저트, 나가노의 유명 커피에서 공수받는 원두로 내린 커피도 함께 제공한다.
오래된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80년 역사의 건물에 위치한 브라운 북스 카페는 책과 커피를 사랑하는 주인장이 운영하는 북카페다.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책장이 맞이하는데, 커피 애호가인 주인장이 운영하는 곳답게 커피 관련 도서를 비롯한 여러 고서, 해외 사진집 및 디자인 도서가 갖춰져 있다. 또한 책과 함께 해외에서 직접 사온 빈티지 가구 및 잡화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어 마치 다락방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책방 뒤쪽으로는 간단한 식사나 다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16석의 자리가 있는데, 유기농 원두를 사용한 자체 블렌딩 커피와 수제 양과자로도 유명해 이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고서, 맥주, 음악의 3박자가 완벽한 이곳 아다논키는 2008년 오픈한 크래프트 맥주바 겸 고서점이다. 도쿄의 한 서점에서 일했던 주인장은 수제 맥주를 함께 배워 당시 삿포로에서는 흔치 않게 크래프트 비어를 선보였다. 물론 고서가 함께하는 술집을 낸 것도 모두의 상상 밖이었다. 주인장 특유의 감각으로 선별한 맥주, 음식, 문화 분야 도서와 잡지들이 주를 이루며, 카운터에는 20여 종이 넘는 국내외 맥주와 함께 주기적으로 종류가 바뀌는 생맥주가 항시 준비되어 있다. 서점 안을 채우는 블루스 음악 또한 분위기를 돋우며 지역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공연이 종종 열린다.
서고·303은 30년 된 오래된 맨션에 여러 개성 강한 작은 가게 20여 점이 모여 있는 ‘Spcae1-15’ 303호에 자리해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은 커피를 마시며 진득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들로 판매용은 아니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 모은 주인장의 컬렉션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자극을 준다. 또한 가게 안에는 전국에서 골라온 잡화를 판매하는데, 특히 주인장이 직접 만든 작은 책 모양 미니어처가 시그니처 상품이다. 가게 안에 흐르는 부드러운 재즈 음악과 융드립으로 내린 커피맛 또한 이곳의 개성 중 하나다.
삿포로를 대표하는 고서점 코난도 북스. 이곳의 주인은 홋카이도 대학 정문 앞 고서점인 난요도(南陽堂) 서점의 차남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가업을 도와 헌책을 만지기 시작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쿄의 고서점에서 경험을 쌓아 귀향했고, 이후 1957년 독립해 지금의 코난도 북스를 세웠다. 각종 역사서, 문학 도서를 비롯한 이공계 도서까지 다양한 폭의 고서를 취급하는데, 특히 매장 안쪽에 위치한 북방 관련 코너는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 열도, 홋카이도의 소수 민족인 아이누족 관련 서적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책들이 갖춰져 있다. 한국 손님들도 종종 방문해 한국 관련 고서나 고지도를 구입한다고 하니 참고하자.
1996년 설립 이후 현재 삿포로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모리히코. 모리히코 예술극장은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책을 테마로 한 카페다. 카페 한 층 위에는 도서관이 있는데, 이 도서관의 책 중 사서가 고른 책들이 카페 책장에 나열돼 사람들은 모리히코의 커피를 마시면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카페에서 구입한 음료를 들고 도서관 안에서 음료를 마시며 독서하는 것도 된다. 모리히코 예술극장의 ‘藝(재주 예)’는 인간 정신이 내적으로 성장하는 가치를 경험하게끔 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카페에 방문한 사람이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가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