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9
이런 것도 책이 되냐고요? 네, 됩니다!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을 수집 중.
나에겐 아주 소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취미가 있다. 바로 일회용 컵 홀더를 모으는 것이다. 맞다. 카페에서 뜨겁지 말라고 테이크아웃 컵에 끼워주는 골판지 같은 그것. 득달같이 모으지는 않지만 기억에 남는 날이나 예쁜 컵 홀더가 보일 때면 그냥 버릴 수가 없다. 그렇게 챙겨온 컵 홀더에는 뒷면에 간단히 날짜와 장소만 적어 상자에 담아 놓는데, 몇 년이나 모을 줄 모르고 작은 상자에 담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큰 상자로 자리를 옮겨 하나 가득 채웠다. (물론 엄마는 예쁘지도 않은 쓰레기를 대체 왜 모으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수집에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굳이 모으는 계기라면, 사진이나 글로 따로 기록하는 수고로움 없이 그날 그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갔다면 뭘 했는지, 함께 갔다면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심지어는 카페의 분위기까지. 비록 자세히는 아니더도 큼직한 파편들이 떠오른다. 음료를 마신 후 그대로 가져오기만 하면 되니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나에겐 좋은 기록 수단이다.
이런 내 소소한 취미와 비슷한 내용을 (훨씬 멋지게) 담고 있는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은택 저자의 『TO GO CUP IN NY』은 뉴욕을 여행하며 만난 카페의 ‘투고컵To Go Cup’과 함께 카페의 정보를 모은 아카이빙 북이다. 하루에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인 저자는 낯섦과 두려움으로 매번 같은 길로만 다니다가 우연히 새로운 골목에서 로컬 카페를 만난다. 그리고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로컬 카페의 매력에 빠져들며 투고컵을 모으기 시작한다. 책의 외형은 서류철 같은 느낌인데, 저자가 직접 바인딩하여 펼치는 재미부터 남달라 책이라기보다 수공예 작품 같다. 북인북book in book 형태로 뉴욕 5개 지역을 분철 가능한 독립된 형태로 만들어 묶었는데, 여행 시에는 하나씩 빼서 가볍게 들고 다닐 수도 있다. 표지를 넘기면 표지 뒷면에 작은 주머니를 달아 뉴욕 카페 지도와 엽서, 스티커를 담았다. 작가의 말도 이 안에 있으니 빠뜨린 것이 없나 주머니를 잘 살펴봐야 한다. 그야말로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독립출판물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