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잃기 쉬운 시대다. 더해져 가는 삶의 속도와 무게 속에 무엇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지의 가치 판단이 힘들어진다. 이는 자신다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어렴풋해지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나 물처럼 주변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의 ‘상실’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일본은 열도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지진과 해일 등 불가항력적인 상실을 겪어왔다. 더 이상은 겪고 싶지 않고 떠올리기도 싫은 이 경험들은 차곡차곡 쌓여 그들에게 자신들은 어떤 존재이며,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었다. 일본인들에게 두드러지는 생활의 검소함이나 실용주의는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가면서도 일본만의 색을 잃지 않는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책의 숲으로 불리는 무사시노 예술대학의 도서관은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 기본에 충실하면서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주목받는 곳이다. 무사시노 예술대학 도서관은 책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 같은 곳이다. 일반 도서관과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전혀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한다.
본(本)을 생각한 책의 숲
도쿄 중심지에서 서쪽 외곽을 향해 조금 가다 보면 작은 도시 고다이라(Kodaira)가 나온다. 오래된 개천이 흐르고 숲의 풍경을 간직한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고요했던 무사시 평원의 옛 모습이 아른거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일본의 풍경이 주는 평화로움이 드리운 이곳에 1961년 문을 열어 세계적인 디자인 명문으로 우뚝 선 무사시노 예술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4월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도 한 캠퍼스는 들어서는 순간 예술대학으로서 각기 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건물들이 눈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 건물들 중 무사시노 도서관은 대학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으로 지나가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록빛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진 도서관은 멀리서 보아도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청량한 기운을 가득 뿜어낸다. ‘책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이 도서관은 2010년에 준공됐다. 도서관은 오래된 서적과 디자인 필사물 등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지하 1층, 책과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1층 그리고 스터디를 할 수 있는 2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은 건물 외부부터 시작해 기둥, 담, 창문 등 모두 책장으로 구성돼 있는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반투명 재질을 사용해 은은하게 햇빛이 투과되는 천장 아래 거대한 8.5m의 기둥 책장이 있으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며 계단, 길 등 모두 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