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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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7
에세이의 탄생
Editor. 박소정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살기 위한 걸음마를 배우는 중.
세상의 다양한 적에 맞서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을 섭취 중.
집사가 될 날을 고대하며 길고양이들과 교감 5년 차, 고양이만이 세상을 구하리라!
생각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특정한 주제가 주어지면 자동으로 스위치가 켜지듯 그것과 관련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경험담부터 관련 지식, ‘카더라’ 소문까지. 때문에 몇 사람만 모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떨까? 누구보다 본인이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예로 자기소개서를 쓸 때를 떠올려보자. 누군가가 보지 않을 소개서라 하더라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쓰기 힘들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조심스레 묻기도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 내 장점이 뭐지?”
프랑스의 대표 철학자 몽테뉴는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해 글을 썼는데, 그는 그런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생활로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여 글로 푸는 것이었다. 사소하게는 ‘괜히 말싸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매 순간을 활용하며 사는 법’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자세’ 등 그의 고민은 실용적 성향이 강했다. 모두 자신의 생활에서 얻은 소재로, 이는 훗날 『에세』로 엮여 출간되었다. ‘에세’는 프랑스어로 ‘시도하다’라는 의미의 ‘에세예Essayer’에서 나온 단어로 ‘개인적 시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에세이 장르의 시초가 된 이 작품은 국내에 『수상록』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작가 사라 베이크웰이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쓴 책으로 방대한 분량의 『에세』를 접하기 전 몽테뉴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몽테뉴는 자신을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리스 철학자 피론의 회의주의와 결을 나란히 한다. 보통 회의주의는 지식에 관련한 부분에 한해서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론의 회의주의 즉 ‘피론주의’는 생활 전반에 대해 의심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면서도 ‘에포케Epokhe’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에포케란 ‘나는 판단을 보류한다’는 뜻으로 그들은 인생에 진지하게 논할 것이 없다고 바라보며 어떤 질문이 오더라도 답을 보류할 뿐이었다. 몽테뉴는 평소 이런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메달에 에포케와 피론주의를 상징하는 저울을 새겨 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점검표로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몽테뉴와 더불어 피론주의자들이 이런 자세를 취한 데에는 긴장을 풀고 궁극적으로 ‘아타락시아’라 불리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시대를 초월해 늘 질문과 선택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런 자세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굳이 답을 내리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서까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 받기도 하는데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아예 엉뚱한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딛고 선 자리는 너무 휘청거리고 불안정해서 흔들거리고 미끄러질 것 같으며, 내 눈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고, 뱃속이 비어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밥을 먹고 난 후의 내 모습과 전혀 딴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몽테뉴는 철학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개개인에 살고 있다고 보며 철학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불확실성’을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에포케는 더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웅크리는 시간과 비슷하다. 바로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자신의 눈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길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