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9
발견의 아름다움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들을 수집 중.
독립출판물의 매력을 꼽으라면 단행본에서는 다루지 않는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루는 점 아닐까. 가령 유명하지 않은 어떤 개인의 이야기, 기상천외한 내용과 형식,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포착 같은 것들 말이다. 소재와 형식이 자유로운 덕분에 수많은 독립출판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만큼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배가 된다. 그러니까,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발견한 책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셈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가지가지도감』 또한 독립출판물의 범람 속에서 건져 올린 특별한 발견이다.
『가지가지도감』은 『화가나요가』 『슬퍼요가』 『잘자요가』 등 ‘요가’ 시리즈와 8개 국가 요리의 레시피와 문화를 담은 『컬쳐레시피』 등 주목받는 독립출판물을 내온 여성 창작자 그룹 ‘사만키로미터’의 책이다. 익숙하기에 지나쳤거나 혹은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들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세상에 드러내는 독립출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사물과 환경을 도감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렇게 발견한 첫 번째 숨은 공간은 바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이다. 이곳은 2003년까지 옛 서울대 농업대학교가 있던 곳으로,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13년간 닫혀 있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만큼 가꾸어지지 않은 풀과 나무의 이야기가 흐르는 곳. 책은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식물들의 이름과 정보는 물론이고, 잎, 꽃, 열매, 줄기에 관한 세부 설명을 감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담아낸다. 재배 방법이나 이름의 유래, 식물에 얽힌 전설이나 쓰임과 효능 등 각 식물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완성도 있는 그림과 패턴 일러스트 디자인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도감’이라는 사뭇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식물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고향에서 아카시아나무에 둘러싸여 가족과 시간을 보낸 후로 아카시아나무를 좋아하게 된 나에게 그것이 사실 ‘아까시나무’라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나무라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가지가지도감』이 두 번째로 담아낸 공간은 ‘비무장지대DMZ’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곳, 한국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공간이다. 남북 각각 2km씩 총 4km의 폭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이곳은 휴전 이후 약 65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이제는 천혜의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불릴 정도로 야생 동식물의 보존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들어갈 수 없는 곳인 만큼 그 생태계는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지가지도감』 1권에서 식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2권에서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사는 동물들을 다룬다. 1권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감수를 거친 각 동물에 관한 설명과 빼놓을 수 없는 패턴 일러스트로 구성했으며,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이곳이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자연적 가치가 있는 곳인 만큼 영문을 함께 수록해 독자층을 넓혔다는 점이다. 다루는 동물 역시 어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하게 다루는데, 반달가슴곰이나 저어새 등 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거나 도시화로 갈 곳이 없어진 동물이 많다. 각 동물의 서식지와 먹이, 습성, 생김새 등을 설명한 후 꼭 멸종 위기를 맞은 이유를 덧붙이는데, 그 원인이 대부분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생각 이상으로 참혹해 죄책감이 들 지경이다.
인간과 맞닿지 않은 곳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순환하며 살아간다. 재생 종이를 사용해 책을 만든 것은 그러한 생물과 공간을 존중하는 나름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귀엽고 예쁜 일러스트 뒤 실제 그들의 삶은 어떤 모양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작은 도움을 건네줄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발견해나갈 또 다른 ‘가지가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