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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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최남연

괜찮은 책이 나오면 일단 사고 보는 출판업계 큰손. 한 권에 3만원이 넘는 여성학 고전 다수 보유.

『질의 응답』
은희경 지음
창비

웬 이상한 제목이냐고? 아니, 오히려 이번 글의 주제를 200% 담고 있는 제목이다. 오늘은 여성 성기에 대해 이야기해볼 테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본인의 성기에 대해 잘 모르고 산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잘 보이지 않는 구조 때문에 눈에 안 띄는 데다가 목욕탕 같은 곳에서 남의 성기를 볼 일도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의 성기를 보며 자라는 것과 자신의 성기는 물론이고 남의 성기를 볼 기회도 없이 자라는 것 사이에는 익숙함의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민망하다거나 본인도 잘 몰라 어머니가 딸에게 무언가 전수해주지도 않으며,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라고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얘기뿐이다. (게다가 썩 정확하지도 않다. 책 103쪽을 볼 것.) 의료계 역시 (서구) 남성 중심적이어서 여성의 몸에 대한 연구가 지금껏 부족했던 데다가 여성의 성이나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거나 꺼렸던 관습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부정확하거나 비전문적인 정보만 나돈다.
사회적으로도 이렇게 관련 지식이 부족한데, 여성 개인에게 그 지식이 있을 리 없다. 나만 해도 몇 년 전 생리가 70일 넘도록 없어 혹시 몰라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고 난 뒤 버리려던 포장지 뒷면에서 마지막 관계 후 2주 정도가 지나야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걸 처음 배웠고, 방광염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었을 때 병원에 가기 전 일단 물을 많이 마시면 좋다는 정보(대부분의 요로 감염은 물을 많이 마시면 좋다, 344쪽)를 학교 커뮤니티에서 얻었으니까. 이런 정보의 부족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 앞에 놓인 문젯거리였던 것 같다. 여성 성기에 대한 책인 『질의 응답』이 노르웨이에서 2017년 1월 처음 나온 뒤 한국을 포함해 폴란드, 러시아, 네덜란드 등 35개국에 번역됐으니 말이다. 국내 편집자의 기똥찬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이 책은 광범위하고 전문적이되 재미있게 여성 성기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정말 ‘거의 모든 일’을 다룬다.
특히, 각종 피임법과 피임약(4장), 칸디다 질염, HPV 등 성기에 발생하는 여러 질병(5장)은 어디서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데다가 인터넷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많은 분야인데, 책에서 정확하고 자세히 다루고 있어 무척 유용할 테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예컨대 ‘임신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때’ ‘생리 출혈량을 줄이고 싶을 때’ ‘생리 시기를 통제하고 싶을 때’ 등 상황별로 적합하거나 부적합한 피임법(257~263쪽)을 소개하며, 호르몬 피임약의 부작용도 흔한 부작용, 드문 부작용으로 나누어 상세히 안내한다. 게다가 클라미디아, 미코플라스마, 헤르페스, HPV 등 성관계를 시작한 이라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여러 질병과 이외에도 꼭 성 매개 감염병은 아니지만 관계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는 칸디다 질염이나 방광염의 원인과 증상을 살핀다. 특히 칸디다 질염(335~340쪽)은 단순히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꽉 끼는 옷을 입는 등 외음부가 너무 습해도 발생하는 매우 흔한 질병이므로 정보를 알아두면 좋겠다. 이외에도 목차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를 나열해 보자면 질, 음핵, 질 막(소위 ‘처녀막’), 냉, 생리, 섹스, 오르가슴, 임신 중단, 다난성 난소 증후군, 자궁 근종, 유산, 임신, 성기 훼손(소위 ‘할례’), 성기 성형 등이며 ‘질을 너무 자주 씻으면 안 된다(질은 스스로 산성을 유지하고 균을 죽인다, 73쪽)’라거나 ‘관계 후에는 소변을 바로 보면 좋다(장 세균이 요도로 올라갔더라도 문제가 되기 전에 씻어낼 수 있다, 345쪽)’ 같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조언은 덤이다. “당신이 질과 뇌를 가진 젊은 인간을 키우고 있다면, 그에게 당장 이 책을 선물하라”는 미국의 성 심리학자 에밀리 나고스키의 추천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질의 응답』을 쓴 저자 니나 브로크만은 의사, 엘렌 스퇴켄 달은 현재 의대생이다. 두 저자는 10대, 난민, 이민자 등 소수 집단에 성 건강을 가르치는 활동을 오래 하다, 의외로 너무 많은 여성이 성기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남몰래 걱정하기만 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을 발견하고는 2015년 ‘성기Underlivet’ 라는 블로그를 열었다. 『질의 응답』은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정보를 모아 낸 책이다. 아쉽게도 나는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제 후배 여성이나 자신의 몸과 더 친해지고 싶은 모든 여성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책이 나와 무척 반갑다. 우리 모두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기를, 여성의 몸을 여성 스스로가 가질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