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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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9
나무를 믿으시나요?
Editor. 지은경
나무교, 나의 새로운 종교.
작년 초여름에 작은 나무수국 한 그루를 샀다. 하얀 꽃송이들이 둥실둥실 탐스럽게 달려 있어 거실 창밖 선반에 놔두고 보았다. 창밖으로 앞에 너무 빼곡하게 건물이 지어지는 바람에 이전까지 확 트였던 시야는 다른 이의 창문을 마주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개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과 창 사이에 커다란 화분들을 놓아야 했다. 하나둘 사 모으니 삭막한 거실 창가는 어느새 작은 정글이 들어찬 듯 기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휴가철이 되어 한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창문 앞 화초들은 처참하게 말라 있었다. 뒤늦게 엄청난 양의 물을 화분들에 부어댔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무들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다시는 화분을 사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여전히 무언가 가릴 것이 필요했기에 창문 앞에는 지난여름 말라 죽은 화초들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놓았다. 해가 바뀌고 다시 산들바람이 부는 3월이 되니 나는 로즈마리와 민트 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화분들을 구입하고야 말았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는 절대 죽이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며. 열심히 창문을 열어 물을 주고 말을 걸어 주었다. 그러던 중 옆으로 밀려난 나무 시체들 사이에서 푸른 점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럴수가!” 지난여름 뒤로 그간 방치한 나무수국의 마른 가지에 빼곡하게 새싹이 돋은 것이다. 나무는 인간의 무관심과 여름의 더위,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물 한 모금 없이 수개월 동안 꾹꾹 버틴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살고자 하는 의지는 또 얼마나 뜨거웠을까? 나는 난생처음으로 생명의 신비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오버스토리』가 내 손에 들어왔다.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읽는 내내 이렇게 숨 막히게 아름다운 소설이 있던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나무를 존경하고 숭배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나무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저 나무일 뿐일까?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나무는 인간의 역사를 지켜보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잘려나간다. 땅속에 깊이 뿌리를 뻗치고 하늘을 향해 중력을 거스르며 솟아나는 나무들은 인간을 향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은 나무의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언어를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허덕이며 살아가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 중심에는 나무가 있다. 아무도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 시대에 이토록 아름답고 극적인 경고를 담아낼 수 있다니,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야기는 1800년대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은 비극적인 밤나무의 일생 사진을 물려받은 화가,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족자와 나무 세공 반지를 물려받은 딸, 격추당했다가 반얀나무 위에 떨어져 살아남은 공군, 파티광인 대학생, 변호사와 속기사, 과학자 등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세대를 거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함께 얽어내 거대한 이야기 숲을 이룬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은 9명의 평범한 사람이 지켜내고자 하는 숲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나무의 긴 일생처럼 기나긴 서사를 갖고 있다. 이 행성의 주인 행세를 해온 인류와 나무가 만나 펼쳐지는 대 모험극은 자연에 대해 거침없는 찬양과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하나의 밤알에서 시작한 한 그루의 밤나무가 살아온 이야기는 마치 인간의 험난하고도 숭고한 일생을 연상시킨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여러 나무들 역시 신비로운 마음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 묘사된다. 인간의 DNA와 매우 많이 닮은 나무는 어쩌면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곧 우리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를 도구나 장애물처럼 그저 쉽게 다룬다. 산에 사는 엄청난 양의 나무가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불타고, 길을 확장하거나 3일간의 올림픽 스키 경기를 위해 무참히 잘려나가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 우리는 나무의 세계에 발 딛고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경건하게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나무와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삶이 나무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 이 책은 더 없이 기여한다. 책을 덮으며 이제야 깨닫는다. 나무는 인류를 구하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고귀한 존재이자 우리의 삶 그 자체임을.
“이곳은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견과를 보고, 목재를 보고, 그림자를 본다. 장식품이나 예쁜 가을의 나뭇잎을 본다. 길을 가로막거나 스키장을 훼손하는 장애물을 본다. 깨끗이 밀어야 할 어둡고 위험한 장소를 본다. 우리는 지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지들을 본다. 환금성 작불을 본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