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희생을 강요한 외면/
영웅은 끊임없이
희생해야 하는가
에디터: 김지영,전지윤
자료제공: 노란상상
그림책의 다양화, 다크 그림책
에디터: 김지영
편견에 사로잡혔던 걸까.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림책을 따뜻한 이야기와 예쁜 그림을 담은 책이라고 정의했다. 조금이라도 어두운 이야기나 사회적 문제를 담은 그림책이 나오면 ‘어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선을 그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직은 몰라도 된다는 어리숙한 생각이 결국 편견을 낳았다.
지난 몇 년간 국내 그림책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동화나 위인전보다 다양한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그림책이 매달 쏟아졌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간 빛을 보지 못한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 작가들은 꾸준히 성장했고, 해외 유명 그림책상을 수상 소식도 전해졌다. 또,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 독자의 수가 늘었고 아이를 위해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부모의 시각도 점점 변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림책을 매개로 활용하는 치료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그림책을 소비하는 시각과 문화의 변화는 큰 성장을 낳았고, 그림책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다.
국내 그림책 시장의 성장은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작가가 시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좀처럼 떠오르지 못했던, ‘다크 그림책’ 장르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다크 그림책은 받아들이기에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일컫는다. 대체로 가정폭력, 죽음 등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내에서는 고정순 작가가 대표적이다.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삶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쓰고 그려서 그간 외면했지만 직시해야 하는 여러 문제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내리쬐는 해는 뜨겁고 아스팔트의 열기에 숨 쉬기도 힘든 한여름에 모든 장비를 걸친 소방관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1인 시위하는 사진을 본 적 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서서 앞만 바라보는 그는 비장하지만 서글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소방관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요구하는 것은 소방관직의 국가직 전환, 소방 업무의 전문화, 장비의 현대화와 처우 개선이었다.‘현장에 가장 먼저 진입하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는 소방정신을 매 순간 실천하는 소방관들은 실재하는 영웅들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영화 속 영웅들은 인간이 아닌 신이나 외계인이다. 인간이 영웅이라면 초능력을 갖고 있거나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재력과 기술력을 갖춰 신을 뛰어넘는 능력의 장비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 곁 진짜 영웅인 소방관들은 낡고 무거운 장비, 강인한 정신력과 지치지 않는 희생정신이 있을 뿐이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동물원에 가면 아이들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라는 동요처럼 코끼리가 정말 코로 과자도 먹고, 물건도 집고, 물도 뿌리는 걸 확인하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소방관인 코끼리 아저씨는 낡은 장비의 한계를 몸으로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코를 손처럼 쓸 수밖에 없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 속 코끼리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차 힘이 떨어지고 곧 쓰러질 듯하다. 책을 함께 읽는 내 목소리가 점차 잠기고 곧 눈물이 차올라 흐를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대놓고 아프다, 힘들다, 죽을 것만 같다고 하지 않는 코끼리의 모습을 통해 아이가 소방관의 열악한 현실을 떠올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 한편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코끼리 아저씨가 너무 힘들어서 쓰러져 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좀 슬퍼.”
“그럼 소방차도 고치고 호스도 새것으로 바꾸고 옷도 새로 사야지!”
“소방관들은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해야 하고 위험한 상황에 가장 먼저 달려가서 구조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장비와 기계는 비싸서 정부에서 사주어야 해. 정부에서 돈을 내려면 국회의원들이 허락을 해주어야 해.”
“빨리 하라고 해.”
“그런데 돈을 써야 할 데가 많고, 국회의원들이 서로 의견이달라서 해결을 못 하고 있어.”
“소방관들이랑 구급대원들을 돕는데 왜 의견이 달라? 소방관들의 낡은 옷을 좋은 것으로 바꿔주고, 병원도 만들어주고, 더 빨리 도착하고 일을 더 잘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일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초등학생이 하는 질문들인데 엄마로서 속 시원히 대답도 못하고, 유의미한 생각거리나 이야깃거리도 던져주지 못한 채 정치권이 지금껏 그러하듯 변명이나 하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