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흔들림 위에 세워진 강인함, 콘스티투시온 공공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Felipe Díaz Contardo

잉카 문명과 이스터 섬이 있는, 길쭉하게 생긴 나라 칠레. ‘남미의 오아시스’라는 별명은 눈부신 관광 상품뿐만 아니라 빠른 경제 발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대한민국이 지금 청년 세대에게 ‘헬조선’이라고 불리듯, 칠레 역시 그 후폭풍을 맞고 있다. 칠레가 2017년 기준 OECD 가입국 중 경제 불평등 1위에 오르게 된 데에는 1970년대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군부 독재에 큰 책임이 있다. 군부는 ‘신자유주의 실험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저돌적으로 시장 중심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고, 덕분에 빠르게 경제적 안정을 이루긴 했으나, 의료나 교육 등 사회의 필수 안전망을 전부 민영화 했다.
2019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대대적인 시위는 고작 ‘대중교통 요금 조금 오른다고’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높은 물가에 못 이긴 칠레 시민들은 1년이 넘도록 국민투표와 개헌을 요구했고, 올해 5월 드디어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 위원을 선출했다. 작금의 칠레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더 견고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3세기에 걸쳐 식민 통치를 거쳤고, 몇 년에 한 번씩 큰 지진을 겪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처럼 말이다. 대단히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강해 보이는, 칠레를 쏙 닮은 도서관을 소개한다.
2010년, 리히터 6.8 규모의 큰 지진이 태평양을 면한 칠레를 강타했다. 이후 2019년도에도 8.8 규모의 강진이 있었지만, 2010년의 지진 피해는 그에 못지않게 컸다. 여진으로 인한 쓰나미때문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콘셉시온Concepción이라는 도시와 거기서 멀지 않은 콘스티투시온Constitución이라는 촌락이었다. 콘스티투시온은 태평양 연안의 작은 도시로, 바다에서 흘러오는 강물이 도시 북쪽으로 흐르는 어촌이다. 당시 총 인구가 약 2만 명이던 이곳에서 쓰나미로 인해 4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 칠레 당국이 지진에는 비교적 대비하고 있었으나 쓰나미에 대해서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까닭이 컸다. 쓰나미가 덮친 뒤 쑥대밭이 된 이 마을의 재건·복원 사업에 2016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이끄는 엘레멘탈 건축사무소Elemental S.A.가 투입되었다. 이곳의 공공도서관 역시 마을의 재건과 커뮤니티의 복원을 촉진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콘스티투시온 공공도서관을 위해 섭외된 건축가 세바스티안 이라라자발Sebastian Irarrazaval은 도서관을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복원할 문화적 거점으로 보았다. 그래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 재료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콘스티투시온에서 가장 큰 산업은 풍부한 목재자원을 활용한 종이 산업이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모습의 이 도서관은 가장 바깥쪽의 화재 방지용 콘크리트 벽과 그 아래 기초공사 외에는 전부 지역에서 생산된 나무로 만들어졌다. 밝은색 목재로 이루어진 외관은 마치 서로 이어진 동굴 삼 형제 같은 모양이다. 이 ‘책 동굴’들은 별도의 층 구분이 없는 단층 구조이나, 경사로나 낮은 계단을 통해 1.5층이라고 할 수 있을 열람 공간으로 올라서게 한다. 열람 공간들은 입구에서 먼 건물 뒤쪽에 자리하는데다가, 약간 높이 올라선 덕에 천장이 가까워 안락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도서관 건너편에 위치한 공원의 오래된 나무들이 창밖 풍경을 메우고 있는데, 이곳 안에서는 굳이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인 광경을 만끽할 수 있다.
콘크리트 벽을 다 드러내거나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간은 한국에서도 흔히 보이지만, 이곳처럼 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곳은 드물다. 화재나 물에 취약한 나무를 이토록 대대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목재가 지역 생산품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도서관이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피해를 기억하는 곳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도서관 곳곳에 설치된 X자형 가새brace와 천장을 수평으로 가득 채우며 마름모꼴로 교차되는 보beam는 지진 발생시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내진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격이 한곳으로 모이지 않게 분산시키고, 좌우로 가해지는 반복적인 흔들림에 버틸 수 있을 만큼 건물 전체에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떤 지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건물은 있을 수 없다. 내진설계의 목표는 사람이 대피할 때까지 건물 전체가 무너지지 않고 ‘잘 흔들리는’ 건물을 짓는 것이다.
콘스티투시온 공공도서관은 흔히 콘크리트 건물을 올릴 때 처럼 벽 안에 철근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전체 골격을 만들고, 사실상 그 골격과 이음새가 다 노출되도록 설계했다. 세련된 공간이 되기엔 다소 어려운 디자인이지만, 나무를 흰색으로 마감한 덕분에 공간 전체가 거칠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주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피난처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미 벌어진 아픈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를 모두 잊지 않고 담아낸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면, 세상 마지막 날에 어제 읽던 책을 꺼내 읽는 듯한 비범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흔들리기 때문에 더욱 강인하고, 거대한 풍파 가운데도 가벼움 잃지 않으려는 따뜻한 공간에서의 독서. 그만큼 사치스러운 순간도 없겠다.
July21_SpecialReport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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