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오기는 안정적인 노선을 따라 살다가 어느 날 느닷없는 교통사고를 당하며,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아내는 물론 평생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다. 건강한 신체, 명예, 지위, 친구들 모두 오기와 거리가 멀어진다. 오기의 삶이 무너진 직접적인 원인은 교통사고였지만,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오기의 사고 직전까지의 삶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는 그의 삶 여기저기에 이미 균열이 가고 있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큰 ‘홀’로 확장한다. 돌이킬 수 없어졌을 때에 도달해서야 오기는 그 안에 매몰된 일상의 선택들과 갈등을 마주한다. 소설가 편혜영의 장편 소설 『홀』의 세계는 이렇듯 불안과 후회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삶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오기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긴장하고 후회하며, 같이 흔들린다.
Chaeg: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오기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무심한 폭력을 자기도 모르게 범해왔고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불행한 사고를 당한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됐어요. 아마 누구나 그런 폭력과 실수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을 텐데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탄식이 나왔습니다. 빨리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사고나 사건 같은 건 하나의 계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요. 삶의 과정에서 축적된 여러 가지 실수, 잘못, 신념이 흔들린 순간 같은 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게 그러한 사건이나 사고죠. 그걸 계기로 세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 멈추거나 뒤돌아보며 생각을 하게 돼요. 오기의 경우엔 그 계기가 불행히 큰 사건이었지만, 대부분은 사소한 일상에서의 충돌이나 오해처럼 작은 일이나 비교적 강도가 낮은 충격도 그런 계기가 되죠. 흔들리는 순간 멈추거나 뒤돌아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잠깐씩 흔들리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나아지려고 하죠. 인생이 쉽게 나아지진 않지만,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교정하고 나아지려고 하는 순간을 계속 갖게 되죠.
Chaeg: 그런 의미에서 작은 충돌이나 사고가 변화의 씨앗 같은 것이 될 수 있겠네요. 변화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요.
살면서 자주 이렇게 흔들리는 것 같아요. 큰일 때문이 아니어도 그렇죠. 친구들한테 오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누군가에게 미안해질 때도 머뭇거리게 되죠. 소설 속에서 오기는 전 인생을 돌아볼 만큼 크나큰 사건을 겪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 잠깐 멈춰야 하는 기척들을 자주 만나요. 자신한테서 올 때도 있고, 외부에서 올 때도 있고요. 오기의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정도의 사건으로 극화되었지만, 일상에서는 작은 사건, 오해들을 곳곳에서 만나죠.
Chaeg: 오기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살다 보니 속물이 되어 있었고,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오기는 피해자에 가까운가요, 가해자에 가까운가요?
오기에겐 두 지점이 다 있어요. 그렇지만 그가 속물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불행을 겪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기의 사고를 징벌이나 인과응보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별로예요. 오기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내와의 오해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거죠. 소설에서는 아내의 목소리가 차단되어 있지만, 오해는 아마 상호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요. 만일 그것이 전적으로 오기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오기가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가해진 폭력적인 상황은 과하죠. 자기 삶이 속수무책으로 망가져 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심리적, 물리적 폭력을 당하는 상황은 동정의 여지가 있어요 .
Chaeg: 사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사람에 대해서건 세상사에 대해서건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비관하고 회의가 많아요. 그래서 자주 돌아보고 질문하고 여러 번 생각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데, 잘 되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