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흐릿한 경계와 존재의 규명,
소설가 임재희
에디터: 김선주
사진제공: 신형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삶은 어쩐지 불안하고 고독하다. 그래서 삶은 내가 있을 자리를 계속해서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인 걸까. 소설가 임재희는 작가 자신의 이민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한 9개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찾아 나가는 듯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우리는 모두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인으로 방황하는 삶의 여정은 단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임재희 작가의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폴의 하루』 속 이방인들이 건져 올린 답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란 어쩔 수 없이 ‘나’에 대해서 쓰는 존재예요. 그래서 결국 나의 정체성과 가까운 인물을 그리게 되는데, 저의 경우 이민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방인들에 시선이 닿은 거죠. 소설이라는 게 배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낸 시대와 만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 관해 쓰지만 결국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기도 해요. 다른 이야기는 다른 작가분들이 잘 쓰고 계시니 저는 저와 맞닿은 주제를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써야 할 이야기”라고 언급하신 적 있는데, 비슷한 주제인 이 책도 같은 인식에서 출발했나요?
역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한 시대를 살고 간 사람들이 있잖아요. 문학이라는 부력으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존재했는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한테 말을 걸어왔던 것 같아요. 하와이에서 우연히 한 묘비를 봤는데, 손으로 새긴 듯한 글씨로 ‘한국에서 태어났음’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이 사람이 죽어가면서 새긴 자기의 정체성이 이것이었을까 싶더라고요. 저도 한국과 미국 둘 다 아니까, 저 같은 사람이 쓸 수 있고 또 써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사실 그런 말을 한 것도 부끄럽죠. 꼭 써야 할 이야기라는 건 사실 없거든요. 작가라는 자의식에 빠져 조금 오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 책은 그냥 처음부터 쓰려고 쓴 게 아니라 체화되어 있던 이야기들이 쏟아지듯 터져 나온 거예요. 첫 단편집이라 많이 새롭기도 했고 애정을 가지고 써 내려갔던 것 같아요.
이민을 갔다가 되돌아온 동희가 아무래도 저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모든 인물에게 다 애정이 가요. 다만, 저는 제가 스스로 이민자의 속내를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가 개별화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 인물을 통해 형상화되면서 ‘내가 많은 것을 일반화하고 있었구나’ 하는 자기반성을 했죠. 의도치 않게 동정만 갖고 그리게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소설 속에 인물이 들어오고 살아가다가 떠나보내는, 일종의 애도 과정이랄까요. 한 사람 한 사람 조심스럽고 깊게 다가가고, 화해하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