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키르코눔미Kirkkonummi는 15세기 중세 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진 도시이다. 오랜 세월 폭격과 벼락을 견디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이 아담한 교회는 ‘황야의 교회’를 뜻하는 도시명에 걸맞게 우거진 들판 위 키르코눔미의 긴 역사를 상징해 왔다. 그러나 노후한 교회는 사람들에게 문화재에 지나지 않았고, 맞은편의 시립 도서관 역시 80년대에 지어져 오늘날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주기엔 부족한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아쉬움을 보완하고자 키르코눔미 시 위원회는 도서관 재건축을 계획했고, 2020년 10월, 도시의 단조로움을 타파해 줄 감각적인 도서관이 개관했다. 과거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던 도시의 심부에 활기를 북돋는 감각적인 공간, 키르코눔미 도서관Kirkkonummi Library을 소개한다.
재건축을 맡게 된 건축사 JKMM Architects는 새로운 건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에 초점을 맞춰 도시와 지역 고유의 특징을 건물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했다. 건축사는 기존 건물의 콘크리트 구조를 재사용해 공간을 두 배로 확장했고, 구리 널빤지로 마감된 외관이 이것을 덮는 구조를 설계했다. 독특하고 입체적인 특징을 자랑하는 도서관 외관에 구리가 사용된 데에는 그것이 수명이 매우 긴 건축자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변색한 구리 지붕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의 결과다. 건축사는 도서관 역시 시간이 지나 교회와 같은 녹청 색을 띄우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건축적 공통점은 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양식이 다른 두 공공장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또한 잔잔한 물결이 지나간 자리, 혹은 그물을 연상시키는 널빤지 표면의 무늬는 키르코눔미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해양 문화를 상징하고 있어, 섬세한 디테일 속 도시의 매력을 한껏 담고 있다.
도서관 건물은 둔각 삼각형 모양으로, 가장 짧은 변에는 교회 마당을 올려다보는 50미터 길이의 테라스가 자리 잡고 있다. 1층에는 이러한 테라스를 따라 뚫린 통창으로 밖을 볼 수 있는 커다란 규모의 카페와 열람실이, 2층에는 음악 감상실과 독서실이 위치하며, 두 공간은 앉아서 열람이 가능한 넓은 층계로 이어져 있다. 예전보다 높이 트인 천장 덕분에 한층 넉넉해진 도서관의 층고는 어린이 행사, 청소년 모임,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위해 적극 활용된다.
세계 1위 독서율을 자랑하는 핀란드인들에게 도서관이란 집 밖의 거실이라고 여겨질 만큼 친근한 장소이다. 키르코눔미시 위원회는 재건축 의뢰 당시 구체적으로 도서관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꼽았고, 이에 따라 키르코눔미 도서관은 편안함과 따뜻함이 강조된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벽과 바닥은 흰 콘크리트로 통일해 공간을 말끔히 표현하고, 창가에 촘촘히 세워진 목재 기둥 사이로 자연광이 들어와 숲속의 빛이 일렁이듯 은은하게 공간에 스며든다. 전체적으로 산뜻한 분위기의 도서관 내 가장 큰 공간인 열람실에는 실용적인 핀란드 모더니즘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된, 건물과 공간에 딱 들어맞는 맞춤 가구들이 배치돼 있다. 모두 주변 해안풍경의 색조에
서 영감을 받은 은은한 색상의 양모, 펠트와 같은 부드러운 천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새하얀 내부 속 포인트가 되어주는 가구들의 색과 질감은 방문객들에게 정말 한 가정의 거실에 있는듯한 안정감을 준다.
도서관 재건축이 마무리될 무렵 키르코눔미는 늘어나는 헬싱키 통근자 인구로 인해 더 많은 주민을 수용하도록 성장하고 있었다. 단순한 다목적 공간과 도서관의 역할을 넘어 방문객에게 편안함과 소속감을 선사하는 키르코눔미 도서관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핀란드인 모두에게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되어 새로운 주민을 환영하고,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현대 핀란드 도서관의 대표적인 건물로 꼽히는 키르코눔미 도서관은 먼 미래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킬 것이다. 구리판이 녹청 색을 띠도록 오래, 황야의 도서관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