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21
햇살처럼 화사하고 노을처럼 그윽한
글.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아직도 다 읽으려면 갈 길이 멀다.
“꽃이 참 예쁘지? 이 나무는 벚꽃나무라고 해.”
남동생은 자신의 다섯 살 큰딸과 세 살배기 둘째 딸, 그리고 조카인 우리 집 아이에게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이 작은 입을 오므리며 감탄사를 내고 손뼉까지 치자 남동생은 한껏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틀린 것은 꼭 그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인 나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핀잔을 주었다.
“저기, 미안하지만 말이야. 벚꽃나무가 아니고 벚나무라고 해야 맞아. 그리고 저 나무는 꽃사과나무거든?”
다른 건 몰라도 식물에는 문외한인지라 평소에는 아는 체를 잘 안 하는 동생이다. 그런 그도 아이들 앞에서는 한껏 어른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머쓱한 얼굴을 내보이는 동생과 그 뒤로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꽃이 건 나무건 그 이름은 틀리게 알더라도 잠깐이라도 자연의 품 안에 머물면 됐다 싶었다. 그 정취를 흠뻑 느끼며 풍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자연스럽고도 확실한 기쁨이라면 집 안에만 머무느라 꾹꾹 쌓인 답답함을 씻겨줄지도 모른다는기대를 안고, 나는 송태갑의 『거기에 정원이 있었네』를 찾았다. 산, 강, 바다, 갯벌, 들녘이 있는 책 속 세계에서 떠나와 다시 복잡한 서울 한복판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여전히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평화를 그리고 있다.
“나비를 보려거든 꽃을 심고, 새 소리가 듣고 싶거든 나무를 심을 것이며, 사람이 그리우면 정원을 가꿔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오랜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안고 있는 마을과 고택, 그리고 정원의 풍경에서는 다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잠잠한 박자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안내하는 모든 장소에 빼곡히 담긴 아름다움은 느린 호흡으로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제대로 음미할 수 없을 정도로 진귀했다. 남도의 곳곳으로 독자를 이끄는 저자의 차분한 발걸음에 절로 숨을 고르고 속도를 맞추게 된다. 그중에는 곡성 기차마을이나 장미정원처럼 근현대에 조성된 공원도 포함되어 있는데, 저자가 일러주는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자원으로서의 가치 등에 대해 귀 기울이니 새로운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소록도 또한 숨겨진 역사를 몰랐다면 ‘한센병’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나 역시 여행지 후보로 선뜻 먼저 떠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송태갑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곳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일러주며 “거기에도 정원이 있었네” 하고 깨닫게 만든다.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그 장소들을 언젠가 꼭 아이와 함께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벌써 그리운 그곳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화처럼 일렁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만 같다. 자연이 가진 힘이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