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6
해로운 사람
Editor. 유대란
어쿠스틱 기타와 깜찍한 캐스터네츠 같은 걸 들고 버스킹하는 애들이 보기 싫어졌다. 그들 미래상의 빤한 선택지가 자꾸 오버랩됐다. ①오디션 프로그램 우승, ②우승 못해도 실력 돼서 픽업됨, ③1, 2번 안 되고 (좀 살면) 카페나 고깃집 차림, 그러다가 치솟는 월세 감당 안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버스킹과 운동 비슷한 것을 하게 됨, ④그냥 잊힘, ⑤블로깅하다가 여행 에세이집 같은 거 내고 북 콘서트에서 깜짝 공연함. ‘아, 정말 빤하다.’ 이런 삐뚤어지고 결정론적인 시선은 사실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빈곤한 선택지밖에 제공하지 않는 현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들의 미래를 미리 협소한 현재에 끼워 넣고, 거기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을 공연히 그들에게 돌렸던 걸까. 나는 버스킹을 보며 해맑게 박수를 보내는 행인들에게도 공감하지 못한다. 대신 아직 맛보지도 못한 허무 의식에 미리 백기를 들고 마는 미지 같은 인간에게 이입한다.
‘겸디갹’이라는 예명의 이자혜가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미지의 세계』 속 미지.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못한 대학생 미지는 모든 면에서 변방인이다. 이 책은 삶, 현실, 하위문화, 자본, 자존감, 취미, 사상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며, 완전하고 평화롭고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염원과 함께 혐오를 느끼는 미지의 일상 이야기다. 그는 친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인디 신의 요정이든 미청년이든 공장 알바 자리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즉시 소모될 것이며, 권태와 허무를 가져올 거라는 점을 예견한다. 그래서 그러기 전에 상상 속에서 그 대상을 짓밟고 파괴하며 희열을 느끼고 그런 저열한 자신을 증오하는 과정을 번복한다. 미지의 세계는 그렇게 흘러간다. 자본, 루키즘, 외로움에 알아서 패배하면서 그 모든 것의 정점에 있는 ‘고급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미지는 모순덩어리이자 그런 이들의 자화상이다.
세상에 장막을 겹겹이 치고 거기에서 반사되는 분노와 허무를 기꺼이 까발리고 싶은 날, 너무 허무해서 남에게 해로울 지경이 되는 날, 미지는 절망의 훌륭한 안내자다. 정말이지, ‘미지의 세계’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