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December, 2014
한 해를 치유하기
Editor. 지은경
2014년이 저물고 있다. 슬프고 비통한 소식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려온 한 해였다. 그 많은 비보들을 접하며 우리는 얼마나 비겁했고 경솔했으며 안타까웠었나. 어느덧 우리는 힐링이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만큼 쉽고 편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섣부르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믿는 것이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지고 진실성 없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진심을 다해 치유를 하고 위로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 한 가지, 이 세상 가장 진심으로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나자신이라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외면하는데 어떻게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 자기계발서가 득세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4년의 마지막 달, 12월호에 소개하는 다음 세 권의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10분짜리 용기를 주는 일회용 반창고도 아니다. 그냥 내 곁에 머물러 줄 친구 같은 책들이다. “슬픈 2014년이여, 네가 가서 난 정말 기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니 더욱 기쁘다. 이제 나 좀 살아보자.”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이미 우리에게 고전과도 같은 소설이다. 이제는 상심과 치유라는 말이 지겹도록 쓰여 그 단어들을 입 밖으로 내기도 싫고 우연하게라도 듣게 되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는 치유 소설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 『키친』은 억지스러운 해답을 들먹이며 힐링이라 떠드는 잡스러운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자세와 용기, 그리고 매우 익숙한 사물들과 친구들이 함께 머무는 고요한 시간, 그리고 평화로운 부엌에 떠도는 소소하고도 행복한 공기를 통해 우리가 밟고 지나쳤던 일상의 위로를 찾아주는 소설이다. 시작부터 듬뿍 찾아온 불행과 슬픔은 한꺼번에 사라지지도 않고 또 초현실적인 행운이 찾아와 역전을 시켜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은이가 묘사하는 따끈한 우동 국물과 차가운 부엌의 타일 바닥,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친구,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건네는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며 슬픔을 덜 슬프게 만들어 주는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해 준다. 슬픔은 그 슬픔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견딜 수 있는 슬픔이 되고 비로소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진리를 부정하고 왜 우리는 수만 가지 환상 속에서 허무맹랑한 이론들을 들추며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기꾼들의 지갑만 두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우리는 왜 불행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가지면서 자기 자신을 잃고 살지는 않는가? 우리는 당장 자신에게 채운 족쇄를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다.완벽주의와 자기 비하, 환상, 그것들에 대한 해소 없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 본래 사람이란 완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 더 훌륭해지려는 지나친 욕심을 거두어야 한다. 모든 상황에서 뛰어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의지하는 일반적인 상식을 거침없이 붕괴시키고 정신적인 폐허 속에서 참된 인간의 모습과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못해도 할 수 있으니 해야만 한다 등의 자기계발서의 뻔한 내용이 아니다. 저자인 디오도어 루빈은 유대계 미국인으로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치료의사다. 그는 정신분열증과 긴장병 환자들,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소설화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상담하고 치료했던 환자들의 사례를 인용해 이해를 돕고 현실적이고도 과학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파괴적인 문화적 가치관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하며 사회가 어떻게 건설적으로 변화할지에 대해 기여를 촉구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못해도 돼요” “안 해도되는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지나친 긍정론이 우리를 그동안 얼마나 옭아매고 있었나? 그래서 우리는 어느 새 ‘못한다’거나 ‘아니요’라는 거절의 표현에 서툴다. 며칠 전한 지인의 SNS 페이지에 떠 있던 어떤 용감한 아이의 동시일기를 떠올려본다. 그 아이의 글은 순간 많은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준다.
동시일기-용기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안다면 어디까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언제의 시점으로 돌아가 어떤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10년만 젊었으면 이렇게 안 살았지” “지금 내 나이가 스무 살이라면 이러이러한 멋진 계획을 세웠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소망하는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정말 시간이 모두 지나고 젊음도 사라져가기에 우리의 인생은 망가진 것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고통과 실패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사소한 실수로 학교를 중퇴하고, 군사학교에서 퇴학당했으며, 숙모의 유산을 도박으로 날렸다. 망설이다가 사랑에도 실패한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가 마법사를 만난다. 마법사의 도움으로 다시 학생이 된 주인공의 삶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원하는 삶을 살았을까? 시간을 원하는 지점으로 되돌려 성취하고자 하는 일들과 원하는 사랑을 성공적으로 이룬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려진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얼마 전 있었다. 관객들은 존재하지도 않을 그런 허무맹랑한 발상을 단순한 오락으로 즐기기보다는 현실로 착각해 그야말로 로맨틱한 꿈을 꾸었다. 영화 속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 주인공은 한마디로 얼간이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동안 모두 그 영화 얘기뿐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가 특별히 내게 절망적이었던 이유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는 한 인생은 엉망진창이라는 결론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고 매 순간이 소중하기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는 이룰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혹은 내가 가진 조건이,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탐탁지 않아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고 어떤 것을 느꼈는가, 또 어떻게 대처를 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